올해 4·3추념식에 참석했던 대통령의 진중한 추념사를 듣고 나서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무례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에 비로소 귀 기울이게 됐음도.
때마침 도청 여성공직자회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4·3역사 체험 나들이’가 있어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북촌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관람하고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엄마와 손 잡고 주변 4·3길을 걸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4·3 피해자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엄마는 할머니가 참 오랫동안 할아버지의 피 묻은 모직코트를 입고 다니셨다고 운을 뗐다.
“할머니가 말하시는데 그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입었던 모직코트에 흘린 피는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덴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난 그 모직코트를 입고 다녔던 어머니가 지금도 기억난다게. 근데 자세히 말을 안해줬주게이.” 그 순간 참 못난 내 질문 “왜?” “그땐 옷이 어섰주게” 1945년생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미안하고 가슴 아파하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전부 아는 10살 차 나는 외삼촌과 할머니만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침묵하며 아파했다는 것에 대해.
얼마 전 외사촌동생은 가족묘를 마련해 이장을 했다. 그때 엄마는 “어머니, 아버지, 오빠 한자리에 다 모시니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정말 모두 편안했으면 좋겠다. 기행을 끝내며 “엄마, 엄마 참 어디 참 데리고 다니기 자랑스러워. 다들 곱다하네.”
엄마가 하얀 웃음을 웃는다. 엄마 ‘진복선’ 그녀의 아빠 ‘진경길’이다.
강은영,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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