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Dutch pay)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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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자유기고가

부정청탁금지법에 공직자가 음식물을 제공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은 3만원이다. 법이 공포됐을 때 먹는 것 가지고 좀 과하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3만원을 상회하는 금액의 식사를 제공받은 자에게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실정법이다.

이 법을 발의한 ‘김영란’ 교수는 발의의 취지를 더치페이 법이라고 에둘렀다. 더치페이는 식사 따위의 비용을 각기 부담하는 걸 이르는 말이다. 자기가 먹은 만큼의 밥값을 저마다 부담하면 법에 저촉될 일이 없을 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더치페이의 실천을 은연중에 시사(示唆)한 대목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더치페이의 순간과 맞닥뜨리면 머뭇거린다. 이를테면 셋이 5만원어치 식사를 했는데, 자기가 먹은 만큼의 계산을 따로 하자니 머쓱하다. 이때부터 고민이 따른다. 5만 원을 셋으로 나누면 1만6670원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잔돈 계산에 서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2만원을 지불하고 둘은 1만5000원씩 내면 편하다. 이 때 셋이 공평하게 내자고 따지면 ‘뭘 그까짓 걸 가지고’ 하는 뒷말이 따른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유럽 쪽에서 온 이들이 식사대금을 각각 따로 치르는 바람에 난감했다는 후일담이 돌았다. 열 명이 밥을 먹었는데 자기가 먹은 만큼이 밥값을 각기 지불하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니 말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한 사람이 돈을 각자에게서 갹출하여 밥값을 치렀을 것이다. 열 명이 십만 원어치를 먹었다면 10만 원을 열로 나누어 대충 계산을 마친다. 매우 합리적인 것 같지만 더치페이 방식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밥값 지불구조는 “이 번에는 내가 낼 테니 다음번엔 자네가 내 게” 하는 순환구조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딱히 “다음번에는 자네가 내 게”가 아니더라도 지불할 금액과 머릿수를 셈하여 한 사람이 거두어 내는 게 일반적이다.

더치페이는 우리 식의 갹출이나 추렴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갹출은 한 사람이 여럿에게서 돈을 걷어서 지불하는 거고, 추렴은 비용을 미리 거두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더치페이의 순수한 개념은 내가 먹은 만큼의 밥값을 내가 지불하는 단순행위다.

몇 해 전 일본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좀 이른 시간에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카야(居酒屋)엘 들렸다. 혼자서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소주칵테일을 주문했다. 칵테일 한 컵에 500엔, 안주는 300엔이었다. 탁자가 셋뿐인 작은 술집이었다. 내가 술을 한 모금 마실 즈음 여성 셋이 들어섰다.

잠시 후 그들이 마시는 술을 훔쳐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한국 브랜드 소주였다. 그 소주를 한 병씩 자기 앞에 놓고 마셨다. 술을 권하거나 따라주지 않았다. 안주도 튀김 두 쪽 씩이 다였다. 나는 평소에 술 실력이 소주 반병이라 젊은 여성들이 이른 시간에 소주 한 병씩을 마시는 것도 그렇고, 안주도 턱없이 부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들이 일어설 때서야 그 연유를 알았다. 마시다 남은 자기 앞의 소주병을 각자가 가방에 넣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술값도 잔돈까지 계산하여 각기 지불했다. 자기가 마신 만큼의 술값을 자기가 지불하는 것, 그것이 곧 더치페이의 실천이다. 그 쉬운 걸 망설일 이유가 없다. 더치페이에 길들여지면 술값이나 밥값 때문에 야기되는 뒷말은 없을 터다. 머지않아 부정청탁금지법 무용론이 고개를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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