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酬酌)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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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적당하다’라는 말은 본디 ‘이치에 알맞고 마땅하다’는 뜻이다. 한데 슬며시 뜻이 흔들리면서 ‘대충 해 버린다.’로 쓰이기도 한다. ‘적당히 얼버무리라.’고 하는 식이다. ‘적당하다’가 정말 ‘적당히’ 쓰여 버리는 경우다. 임시변통으로 넘어가는 요즘 세태가 고스란히 언어에 투영된 예다.

수작(酬酌)이란 말이 그렇다. ‘수작(酬酌)’은 원래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의미다. ‘갚을 수(酬)’에 ‘따를 작(酌)’ 그대로다. 두 글자의 ‘유(酉)’ 변은 술 주(酒) 자의 고속자로 애초 술을 뜻했다. 술 단지 모양인데, 뒤에 물수 변(水)이 붙어 ‘술 주(酒)’가 됐다. 그러니 ‘수작’은 주인과 나그네가 혹은 친구끼리 술잔을 권커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우애로우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대우하는 예도가 스며있다. 절제하는 것이다.

술로 정을 나눈다. 주고받노라면 주흥(酒興)이 일어 자리가 무르익는다. 때로는 넘쳐 깎듯이 하던 수작이 허튼 수작으로 번지기도 한다.

돌연 ‘개수작’이 돼 버릴 수도 있다. 일단 수작이 고삐가 풀리면 엉뚱하고 뻔뻔하고 추잡한 수작이 되고 마는 게 그것이다. 요즘 포토라인에 서서 표정 관리하는 부류들은, 수작을 부리거나 꾸민 그런 자들로 봐 틀림없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차마, 이렇게 멋대로 수작을 벌이는 험악한 세상이 될 줄이야.

미투 운동이 세상을 강타하더니 묘한 흐름이 생겼다. 작장이나 조직에서 괜한 오해를 피하고 자신을 방어한다고 소위 펜스 룰이란 울타리를 치려는 것. 회식이나 업무협의 등 소통 채널에서 공공연히 여성을 배제하려 든다. 여성들이 참여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남성들이 둘러치는 펜스 같은 묘한 장치다. 이는 또 다른 여성 차별로 이어져 불화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야 될 것인가. 미투 뒤에 숨은 나쁜 수작의 손길을 이참에 끊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서 무엇이 잘못됐었는지 통렬히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게 미투다.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끄고나 보자는 식으로 여성을 따로 세우려는 발상은 본래의 의도를 외면한 것이다.

한 조직이 원활히 기능하려면 구성원 간의 수작은 선택 아닌 필수다. ‘작(酌)’은 매우 포용적인 글자다. ‘짐작(斟酌)’은 술을 따를 때 넘쳐도 모자라도 예의가 아니므로 그 양을 가늠하는 것이다. ‘짐(斟)’은 ‘머뭇거리는’ 것 아닌가. ‘작정(酌定)’에 이르러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짐작을 한 연후, 따를 술의 양을 정함이다. 무작정(無酌定)으로 가면 큰 결례가 된다. 술이 약한 사람에겐 ‘참작(參酌)’하면 참 좋다. 상대의 주량을 헤아려 그에 맞춰 따라 주려는 배려다. ‘헤아릴 참(參)’이니까.

수작하면 먼저 감흥(酣興)이 인다. 술을 즐기는 단계다. 다음으로 가면 ‘탐(耽)’으로 술에 빠진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마칠 졸(卒)’이 들어가 ‘취할 취(醉)’가 된다. 이제 그만 마시라는 적신호다. 술잔을 더 잡고 있으면 사람이 ‘추(醜)’해진다. 귀신(鬼)이 붙는 것이다.

술을 마시되 수작을 잘하면 매우 즐겁고 유익하다. 수작이 정상 궤도를 이탈해 나오는 게 ‘괴물’이다. 미투니 펜스 이전, 절제와 예절 속에 아름답게 수작할 일이다.

옛 선비들은 자연에 침잠해 꽃과 새와 폭포와 수작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고매하면서 천연덕스러운 통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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