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定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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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어느 정도 규모의 건물 입구 한구석에는 대개 정초(定礎)라고 쓰인 머릿돌이 있다. 건물의 기초를 잡아 정한다는 뜻으로, 건물을 세울 때 기초 공사를 마치고 정초석을 설치하여 공사 착수를 기념하는 것을 정초식(定礎式)이라고 한다.

이를 빗대어 정치학 용어로 ‘정초(定礎)선거’란 말이 있다. 정초석처럼 이전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정치 지형의 틀을 잡은 선거를 말한다. 결정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의미의 ‘중대(critical)선거’와 혼용하기도 한다. 정치학계는 정초선거로 1948년 5·10 총선거와 1988년 13대 총선을 꼽고 있다.

▲1948년 5·10 총선거는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말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직접선거라는 점과 95.5%라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남긴 선거로 기록돼 있다.

제13대 총선거는 1988년 4월 26일에 실시됐다. 제6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치른 처음 선거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참패함으로써 국회 주도권을 쥔 야당이 ‘5공 청문회’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 같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은 ‘3당 합당’을 돌파구로 선택하며 218석의 거대 여당(민자당)을 탄생시켰다.

▲6·13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정치권 일각에서 정초선거란 말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독식하다시피 했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궤멸했다. 광역단체장은 17곳 가운데 14곳(82.3%),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12곳 중 11곳(91.7%), 기초단체장은 226곳 중 151곳(66.8%)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광역의원은 민주당이 총 824명 중 652명(79.1%)을 당선시켰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2016년 총선(여소야대)→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2017년 대선(정권교체)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전국 단위 3대 선거로 인해 정치·이념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다수당 체제의 등장을 정초선거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유권자가 재정렬·재편성되거나 정당 체제가 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선거로 지방 권력의 뿌리까지 바꿨다. 보수 야당은 누구 말마따나 불파불입(不破不立·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해야 할 지경이다. 새로 새판의 ‘정초’를 할지, 대충 뜯어고치는 선에서 ‘리모델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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