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약관에 도일 후 사업 능력 발휘…학교 설립·명문 사학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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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흔, 매계의 문하생…후진 양성 몰두
고영희高永禧, 항일 운동 전개
고영희高英姬, 북한 김정은·김여정 친모…평양 시내에 묘 조성
고예구, 고산학원 이사장 등 역임
고오노, 탐라 왕세자…고려에 입조
고완천, 제주교육 발전 등 앞장
고요신, 고봉례 13세손…무과 급제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귀일중학교의 현재 모습. 지암 고완천 선생은 1953년 3월 귀일중학교 인가를 받아 귀일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고완천 선생은 고충홍 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의 부친이다. 사진 제공=귀일중학교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귀일중학교의 현재 모습. 지암 고완천 선생은 1953년 3월 귀일중학교 인가를 받아 귀일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고완천 선생은 고충홍 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의 부친이다. 사진 제공=귀일중학교

고영흔高永昕1841(헌종7)~1914(일제강점기), 문사, 한문 훈장.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호石湖. 조천면 신촌<숙군>에서 태어나 매계梅溪 이한진李漢震(신촌)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석호石湖 고영흔은 조선 후기 순조대의 제주 문인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1818~1881)의 문하생으로 그가 쓴 책에 스승이 품제한 영주십경瀛洲十景이 수록되어 있다.

고영흔은 1890년 승보시陞補試에 합격하고 문과 시험에 도전하려 했으나 과거 제도가 문란해진 것을 알고는 이를 단념했다. 1904년부터 훈장으로서 후진 교육에 몰두하고 문장이 뛰어나 수 10편의 한시가 제가음영집諸家吟詠集에 전해진다. 시집 1권이 있다. <‘이한진’(오문복의 영주풍아) 참조>

고영희高永禧①:1906(광무10)~?, 무정부주의 항일활동, 본관은 제주, 고명준의 아들로 산북 건입동<건들->에서 출생.

19273월경에 무정부주의 연구기관의 문고를 설치, 이 무정부주의 항일 운동은 호남 지방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결사여서 일제에 의해 사건화되어 고병희 외 5명에 대한 공판이, 1931714일에 대구복심법원에서 고병희와 조대수는 각각 징역 3년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각각 징역 26월을 선고받았다.

이 계를 무정부주의 연구 비밀 결사로 발전시켜 일본의 통치권을 무력화시켜 결국 한국의 독립을 성취시키고자 활동했다. 정부에서는 1990년 고영희에게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고영희高英姬(또는 고용희高容姬) : 1953~2004,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친모.

북한 최고 권력자였던 김정일金正日의 아내. 김일성의 며느리. 제주도 출신 고경택의 딸.

고영희는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태어나 9세 때인 1962년 부모와 함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고영희는 19세 때였던 1972년 당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공훈 배우칭호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4년 유방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줄곧 함께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영희는 북송 이후 1971년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가로 활동하던 중 김정일의 눈에 띄어 동거 생활을 시작했으며 정철·정은·여정 3남매를 낳았다.

2002년부터 북한에서 평양의 어머니로 불리며 우상화되다가 2004524일 프랑스에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고영희의 오빠 고동훈은 1990년대 해외에서 북한외교관으로 활동했고 동생 고영숙은 제네바에서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다 19985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고영희의 무덤은 20126월 평양 시내에 설치됐다.

한편 북한은 유방암 치료시설인 유선종양연구소를 201210월 평양산원 산하에 완성했다.

김정일은 유방암으로 사망한 아내를 생각해 유방암 치료시설 확충에 신경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시 봉개동에 고영희 아버지 고경택의 묘를 비롯해 14기의 묘가 조성돼 있었으나, 고경택의 묘만 사라졌다. 인근 주민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묘비석 등을 후손 중 한 명이 치운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일 위원장 외조부의 묘가 제주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파문이 일자 묘비 등을 치운 것으로 보고 있다.

고예구高禮龜생몰년 미상. 한경면 고산리 출신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을 거쳐 고산학원 제2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고오노孤烏弩생몰년 미상, 고려 현종 때의 탐라의 유격장군游擊將軍. 1024(현종15) 7, 탐라의 왕세자로서 고려에 입조하니 고려 조정에서는 유격장군을 제수하고 도포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고완천高完泉1911(일제강점기)~1982, 육영사업가, 귀일중 창설. 호는 지암志巖, 본관 제주 영곡공파, 애월읍 하귀리<귀일>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들 고충홍高忠弘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을 지내고 있다.

고완천은 사립초등 일신日新학교 졸업했다.

일신학교 설립자 백창유白昌由가 일본에서 돈을 벌었다는 얘기에 뜻을 두어 그가 약관弱冠으로 도일渡日, 흥아興亞금속을 설립해 사업 능력을 발휘, 동년 4월 하귀리 불근-길가에서 개교를 보았다. 그는 해방 이후 전분업澱粉業에 성공, 백창유의 어승생 물 수로水路사업의 뜻을 이어 귀엄貴嚴수리조합 초대 조합장으로 농지개량에 힘썼다.

모교인 신엄리<엄쟁이>의 일신日新학교 출신이기에 학교설립자의 건학建學정신을 이어 실현한다는 의미로 195211월 새롭게 학교법인을 설립, 그밖에 지암은 제주보육원을 운영, 또 다른 사업 남선南鮮어업, 1산업, 신천산업 등을 운영한 바 있다.

고완천은 19533월에 3개 학년에 6학급 규모의 귀일貴日중학교 인가를 받아 귀일학원 이사장理事長에 취임했다. 학교 구내에 설립자 고완천 선생상이란 흉상胸像을 설립되었다. 한편 귀일중은 지난 124일 기준 제 65회 졸업, 9506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고요신高堯臣 무과 급제 교지. 문무 대과에 급제한 자에게 수여한 합격증이다.

고요신高堯臣생몰년 미상, 무신, 훈련원 첨정, 성주 고봉례의 13세손.

1680(숙종6) 봄에 순무어사 이증李增에 의해 고원진高元進, 고원익高元益, 이기철李起哲 등과 함께 시취되어 상경, 전시 무과 대과에 급제. 훈련원 첨정 등을 역임했다.

그의 홍패紅牌는 문무 대과에 급제한 자에게 수여한 합격증으로 종이의 빛깔이 붉은 빛이다. 홍패는 고요신의 10세손 제주도의회 전 의원 고병효高炳孝가 보존 중이다.

고요신高堯臣홍패紅牌’=수량1/ 규격101×84/ 시대1680/ 소유자고병효高炳孝(오라리)/ 재질홍저지紅楮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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