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정
사랑의 가정
  • 제주신보
  • 승인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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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섭, 시인·수필가

1852년 4월 2일, 알제리에서 죽은 한 시신이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 유골이 도착하자 엄숙함으로 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작사한 노랫말 ‘즐거운 나의 집’ 즉,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작은집뿐이리.’ 홈, 스위트 홈, ‘존 하워드 패인’ 이 작사한 노래가 전 미국인들에게 애창되었다.

어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상 살면서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와 이러한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가정은 소중한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치 있게 논문을 써보고 많은 글을 썼지만 가정을 위한 그 이상의 더 귀중한 글은 없었다.

가정의 소중함, 믿음이 없이는 이루지 못하리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가치는 희망, 청춘남녀의 사랑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

안식함과 쉼터가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다. 이 세상에서 가치는 또 평화이다. 진정한 평화 그 아이가 아버지를 신뢰하는 그 눈빛에서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안식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평화가 하나로 뭉쳐지는 가정 속에 다 들어있다. 지난 오월은 가정의 달이요, UN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재조명할 긴급 필요성으로 1994년을 ‘가정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렇듯 가정은 작은 공화국이다. 아버지는 대통령이며 왕이고, 아들은 왕자이며 딸들은 공주이다. 풍자적인 얘기가 아니라 이러한 가정 안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숭고한 사랑을 일구어내는 출발이자 공급자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매우 어렵고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은 항상 고난이 있고 상실이 있다지만 그렇지만 상실 위엔 버섯처럼 솟아오르는 얻는 것이 또한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강박한 삶을 한답시고 양심을 잃고 막무가내 격으로 사회생활에 적응 한다는 것, 그건 인격적 상실과 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그래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하겠다. 사랑은 베풀기가 어렵고 영원하기가 어렵다지만 사랑은 고단한 영광이라고 전하지 않았는가, 한민족의 자손들이 다툴 일이 있어도 좀 더 넓은 아량으로 산다면 얼마나 오순도순 아름답게 보일까.

복지로 가는 사회, 가정과 모든 기관이 사랑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가정을 지켜나가는 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삶이자 참되고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밥상머리 앞에서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어야 한다. 건강하고 튼튼한 가정, 이러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또한 이러한 가정이 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다.

마음속의 소요는 한결 다스리기가 어렵고 어느 때는 평생을 다 살아버린 뜻한 피곤에 휘말려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더라도 백 번 일어나는 오뚝이의 위력을 마음속에 염두하면서 한나라 한 지붕 아래서 숭고한 정신으로 사랑의 정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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