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민들레 편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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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개살구, 개망초, 개떡, 개머루…. 앞에 접두사 ‘개’가 붙는 말은 제 대접을 못 받는다. 비슷한 것일 뿐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진달래를 참꽃이라 하면서 그와 매우 유사한 철쭉을 ‘개꽃’이라 할 정도다.

같은 경우로 ‘아재비’란 말이 있다. 아저씨를 낮춰 일컫는 말이다. ‘민들레아재비’라 하면 고개 갸우뚱할 것인데, ‘개민들레’의 다른 이름이라 하면 이내 고개를 끄덕일 테다. 이때, ‘아재비’도 참 서열에 끼지 못하는 가짜라는 의미다.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종이라는 표시다.

개민들레는 민들레가 아니다. 개민들레 혹은 민들레아재비. 원래 서양금혼초라는 표정 없는 이름을 가진 여러해살이풀이다. 삶의 터전을 우리 땅으로 옮겼으니, 유럽 원산의 외래식물 혹은 표류·귀화식물이다.

개민들레는 토종민들레에 비해 턱없이 겅중 키가 크다. 큰 허우대가 뿌리 잎으로 양면에 억센 털이 빽빽이 나 있다. 놀라운 게 녀석의 번식력이다. 한 개체가 일 년에 2300립(粒) 이상의 종자를 맺는다고 한다. 그 씨알이 바람에 날려 이곳저곳에 싹을 틔운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번식력이 아닐 수 없다.

토종민들레는 봄 한철 꽃을 피우는데, 이 녀석은 봄에서 가을까지 세 계절에 걸쳐 연신 꽃 시절을 누린다. 크고 억센데다 긴 개화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태생적인 역량으로 채워져 있어 당차고 야무지다.

1980년대, 목초 종자에 섞여 들어왔다니 이 땅에 발붙인 지 불과 30년, 그새 제주의 산야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어 놀랍다. 유입된 지 100년이라는, 비슷할 뿐 다른 육지의 서양민들레도 토종보다 더 흔한 종이 돼 있다고 한다. 환경 적응력이 개민들레 못잖게 탁월한 모양이다. 이렇게 외래종은 그 근성이 지독해 혀를 차게 한다.

단순히 경이의 눈으로 바라볼 것은 아닌 듯하다. 그들의 왕성한 번식에 우리 생태계 체제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행여 외래 내습자에 의해 우리 산과 들의 아기자기한 풍치에 금이 가거나 파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게 기우였으면 좋겠다.

개민들레가 고유의 생태계를 잠식·위협하는 틈입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들을 보는 눈길이 점차 순해지고 있는 듯하다. 나 자신이 그렇다. 그들을 눈앞에 놓고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더욱이 오름과 들녘을 곱게 채색한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혀를 찬다. 그뿐이랴. 한길 길섶이며 중앙분리대 화단에도 노랗게 피어 목을 뽑고 훈풍에 너울거리고 있다. 이제 그들은 지천이다. 시선이 이르는 도처에 무더기로 뒤덮여 있다.

이쯤 되고 보니 주객전도다. 딴은 주객을 가를 것도 아니다. 자연 속의 한 존재로 정착했다고 인정해 주면 그만이다. 이제 저들을 외래객으로 내몰 게 아니라 ‘우리’로 귀화시켜 무방하리라. 제초제를 개발한다는 소식은 들어도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심각한 보고는 없는 성싶다. 비록 ‘개’ 자야 붙었지만 낯선 것에 대한 푸대접이었을 뿐이다.

뭣한 말로 토종을 밀어낸다고 그게 무슨 죄인가. 너무 급격히 번지는 ‘퇴치불능의 잡초’라는 딱지를 떼 줘야 할 때다. 한길 양쪽으로 늘어선 노란 꽃무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즐겁다. 돈 들여 꽃을 재배도 하는데 이야말로 뜻밖의 호재(好材) 아닌가.

개민들레에게 너무 기울었는가. 그래도 한결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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