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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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

서귀포에는 월드컵경기장의 부속 건물인 ‘롯데 시네마 7’이 있다.

극장에서 화장실을 찾았다. 깨끗한 편이었다. 화장실 내의 앞문에는 ‘이 화장실의 화장지는 물에 녹는 특수종이이므로 변기에 그냥 버려 주십시오.’라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곳의 휴지통에도 사용한 화장지가 3분지 1은 차 있었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 때문에 ‘하던 대로’한 것이었다.

집에서는 60㎝쯤 화장지를 쓰던 사람이 공공시설물에 가면 3m쯤은 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의 습성이다.

어쨌거나 화장실을 다 이용한 다음에 화장지를 변기에 넣는 것을 나도 잊었다. 휴지통에 던져놓은 것을 도로 찾아다가 다시 변기에 넣기도 그렇고 낭패였다.

하던 대로 하는 습성이란 무서운 것이다. 소변기 주변은 어떤가. ‘한 걸음만 앞으로’라는 표지가 눈앞에 있는데도 멀찌감치 서서 일을 보니 주변이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왼쪽 통행에서 차나 사람이나 오른쪽 통행으로 바뀐 지가 10년도 더 되는 것 같은데, 실상은 제멋대로 지그재그 통행이다. 횡단보도 통행 시 반 이상이 제 갈 길로 간다. 당연히 범벅이 되고 쓸데없이 짜증스럽다. 횡단보도 마다 오른쪽에 화살표 두 개로 통행방향을 알리지만, 막말로 범칙금 내는 것도 아니니까 가고 싶은 대로 갈 뿐이다. 더 한심한 것은 나이 든 분들 중에는 아직도 왼쪽 통행이 맞는 것으로 알고, ‘하던 대로’할 뿐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오일장에만 가도 상인들이 휴대용 카드체크기를 갖고 다닌다. 그럼에도 ‘하던 대로’ 현금만 통하는 줄 알고,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현금이 모자라서 그냥 물러서는 경우도 많다. 오일장의 범벅 통행이 짜증스럽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이다.

소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좀 잘 나가는 식당에 가보면 된다. 네댓 사람의 손님이 술 마시면서 떠드는 소리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아니 다른 손님도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전세 낸 줄 착각한다. 일행의 말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어 그는 자기가 말을 잘 하는 줄 여긴다.

비행기의 이륙소음이 80데시벨이라는데, 그 손님들이 고성 대화는 90데시벨이 되는 것 같다. 시켜놓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나올 수도 없으니 낭패다. 우리 민족은 원래 대화의 목소리가 큰 편이라는데,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 손님들에게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가는 쓸데없는 싸움으로 번질 뿐이다.

가끔 김치나 깍두기를 먹을 만큼 덜어서 먹도록 통에 담아서 내오는 식당이 있다. 좋은 일이다. 오늘 갔던 식당은 점심시간에 손님이 붐빌 시간이었다. 홀의 다섯 군데나 ‘김치나 깍두기를 접시에 남기지 마세요.’란 표지가 붙어 있었지만,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접시마다 남겨진 것은 김치요, 깍두기였다.

뷔페식당에선 음식을 남기면 벌금 5000원 등의 표지를 붙여 놓지만, 벌금을 내는 손님을 본 일이 없다. 무엇이든 하던 대로가 몸에 배어 있는 우리에겐 딱한 노릇이다. 벌금은커녕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는다.

‘하던 대로’를 바꿀 묘안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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