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인생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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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이사준비로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주었던 쪽지 편지들을 발견하였다. 작은아들에게 보냈던 쪽지에는 대부분의 내용이 조각모음을 잘 해야 컴퓨터 용량이 더 커지듯이 정리를 잘 해야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된다는 지극히 내 기준에 맞추어 강요했던 것들이다.

작은아들은 어릴 때부터 정리하는 것이 나랑 차원이 달랐다. 나는 책상위에 널브러진 책을 책꽂이에 차근차근 꽂아 놓는 것이라면 아들은 보던 책을 책상위에 모아두는 것을 정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의 차이로 방은 정리를 했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정리가 전혀 안 된 상태라 정리를 해주다가도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쪽지편지를 썼던 것이다. 지금도 서른이 된 아들 방을 가보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 정리를 하며 잘 지내고 있는데 내 기준만 강요했던 것에 너무 많이 미안하다.

그렇게 정리에 목 매인 사람처럼 살아왔는데 물건들 정리는 한다고 하면서 정작 머릿속은 항상 뒤죽박죽이라 잡아당기는 대로 뒤뚱거렸다. 나이 들수록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비우며 버려야 하는데 어제와 같이 오늘도 더 집어넣으며 습관처럼 지내고 있다.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항상 바쁘다는 생각만 들고 이 순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이사준비를 위해 집안 구석구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살피며 버릴 것과 가지고 갈 것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쓰지 않는 물건은 정리하며 살아야지, 그리고 단출하게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최소한의 것만 가져가려고 한다. 그런데 버리는 기준이 명확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기준이 모호하면 취사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또 제대로 정리가 안 된다.

이제 2막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잡고 있는 것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다. 아마도 오랜 습관으로 미련이 남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버리고 나면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계단을 올라가려면 두려워도 한 발을 떼어야만 오를 수 있는 것처럼 두려움과 미련이 많이 남은 것일지라도 이제 내려놓아야만 새로운 길을 나설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려한다. 다행인 것은 내가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기준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 기준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면 정리하는데 한결 수월할 것 같다. 1막 인생은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려고 안간 힘을 썼다면 2막은 세워진 기준에 비춰 내보내야 될 것들을 하나씩 내보내며 그 여백에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그려가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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