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혼밥’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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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일본 치바대학교 준교수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지인 교수와 함께 도쿄 우에노에 있는 한 라면가게를 찾았다. 일명 ‘독서실 라면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일인용 테이블에 각각 칸막이가 쳐져 있어 마치 독서실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음식을 먹으면서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롯이 라면 맛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혼자서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일본의 ‘일인(一人)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다. 라면을 시키며 지인 교수는 이번에 일본에 와서 가장 놀란 점 중에 하나는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에 일인용 테이블이 많았다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명 ‘혼족’ 문화로 불리는 일인 문화가 이미 오래전 일본에 정착했음을 시사한다.

일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혼밥이 늘어난 데에는 단순히 개인문화 환경이 발달한 데 따른 것만은 아니다. 고등학교까지 단체 생활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대학에서 혼자서 행동하는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혼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심지어는 개인실로 된 화장실에서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듣는다. 일본 대학은 이런 혼밥으로 인해 생겨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한 이른바 혼밥용 좌석을 만들어 제공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2000년경부터 혼자 먹는 식사를 ‘고식’(孤食)이라고 표현한다. 혼밥을 즐기기보다는 혼자서 식사하는 것에 대해 고독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고독식이라 불린다. 지난달 일본 농림수산청이 발표한 2017년도판 식육(食育: 바른식생활교육)백서에 따르면 20대 이상 유효 조사 응답자 중 15.3%가 일주일에 절반 이상 하루의 모든 식사를 ‘고식’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1년의 조사에 비해 5% 증가한 수치이며 독신 세대의 증가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고식’은 저영양과 편식으로 인해 건강 밸런스가 깨질 뿐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심리적인 문제도 크다.

일본 정부는 2005년 식육기본법(食育基本法)을 제정해 먹거리 전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교육하는 것과 함께 ‘공식’(共食: 함께하는 식사)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령자를 위한 공동부엌이나 어린이식당이 그것이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도 혼밥족이 가상공간에서 매일 같이 ‘공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혼족’ 문화가 트렌드로 잡혀가고 그 중심에는 혼밥이 있다. 식사를 했는지가 인사말처럼 쓰이고 식사 약속이 대인관계를 위한 레토릭(rhetoric) 처럼 쓰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혼밥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그 논의들의 중심에는 몇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40년간 일본의 ‘고식’과 ‘공식’을 연구 실천해온 아다치 미유키(足立己幸) 나고야학예대학교 명예교수는 ‘공식’은 단순히 먹는 행동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고 음식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다시 말하면 식(食)을 영위하는 모든 행동을 공유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외형적으로는 함께하는 식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고식’이 증가하는 것도 살펴야 함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식사시간에 각자 핸드폰을 보는 등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는 ‘공식’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식’을 통해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 그리고 형식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은 ‘공식’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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