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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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대처에서 한 삼년 마이크로 학원 강의도 해 본 경력인데 이상한 일이다. 노래방에 가면 찌릿하게 주눅이 든다. 음치라 어정떠 그런 것일 테다. 노래방에 뒤 따라가긴 해도 앞장서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노래는 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인 모양이다. 노래방에 안 가도 그냥 입으로 흥얼거리게 되니까.

한을 토하듯 울부짖듯 가슴으로 토해 내는 창법, 독백하듯 때로는 우수 깃든 목소리가 처진 어깨를 감싸는가 하면, 때로는 용암처럼 분출하는 폭발적인 포효…. 왜소한 체구, 허름한 옷매무새, 손 간 지 오래 멋대로 자란 수염, 푹 눌러쓴 모자로 지하철을 타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가수, 그래도 그렇게 입고 철없이 나부대는 그가 무척이나 좋다. 꼭 꼬집어 얘기해 그의 버전이 좋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 요약되는 그의 인생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열정적 힘이 느껴지는 탱고 리듬에 애절함이 담겨 있는 허스키한 목소리, 소리 자체가 음악인 낭만 가객, 무엇보다 인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힘이 실리는 육성의 최백호, 그가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데뷔 40년이란다.

그의 노래 중심에 ‘낭만에 대하여’가 자리를 튼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입부터 촉촉하게 젖어든다. 커피숍이나 라운지가 아닌, 어느 도시의 좁고 외진 골목 어귀에 시대의 유물로 남아 있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으로 사람을 소환한다. 어느새 그의 노래의 자장에 끌려든다. 도라지위스키 한 잔, 짙은 색소폰 소리에 절어 버린 귀가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기억의 회로에 선 자신을 발견하곤 어느새 전율하고 있다.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소리’가 들리고 노래 속 화자처럼 나도 ‘청춘의 미련인들 있겠냐’고 자신을 추스르다 텅 빈 부재, 헛헛한 심사가 ‘낭만에 대하여’로 흐른다.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다. 집어내 이런 거다 하지 않고 흐지부지하다. 그렇다고 얼버무린 건 아니다. 그렇게 흐느끼듯 결말에 이른 것뿐이다. 해피엔딩은 아니나 비극적 결말도 아니다. 서러움을 인생의 무게로 삭여 낸 걸까.

문득 설거지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예전 나의 첫사랑도 늙어 지금쯤 저렇게 설거지를 하겠구나.” 하며 회상으로 갔다고 한다. 무릇, 질리게 그만그만한 말을 반복하는 따분한 가요완 다르다. 웬만한 시 못잖다. 시라고 내놓는 시답잖은 것 저리 가라다. 노랫말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운명적 삶의 모습 그대로를 담백하게 담았다. 고아하지 않아도 결코 추하지 않다.

다 아는 일이지만, 이혼 이력 뒤 재혼해 딸 하나를 뒀다. 처가 쪽의 반대가 드셌으나 나중엔 처가 신세를 톡톡히 졌다고 한다. 수입이 0원이던 시절 얘기다. 가수가 입을 연다. “이제 얻을 걸 얻었기에 욕심이 없다. 그저 좋은 선배로 남겠다.” 가수 이전에 여염가 선량한 서민의 한 사람이다. 이어지는 말, “딸 결혼식에, 드레스를 입지 말고 예식장에서도 하지 말며 가족과 친지 몇 사람만 초대해 조용한 바닷가에서 하라 했다. 축의금도 받지 않겠다.”

나하고 코드가 맞겠다. 그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노래처럼 마음으론 그와 함께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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