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바벨론 포로’
러시아의 ‘바벨론 포로’
  • 제주신보
  • 승인 2018.07.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젊은 시절에 잠시 글 쓰는 일을 할 때가 있었다. 그 일을 그만둘 무렵에 썼던 글이 체르노빌에 대한 기사였다. 1986년 봄에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자로가 폭발했는데 사건이 일어나고서도 여러 날 동안 소련은 다른 나라에 알리지 않았다. 스웨덴의 방사능 측정기에 심각한 이상이 감지될 때까지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은 그 어두운 무책임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시기에 나는 과학 분야를 그만두고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소련이 장차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관심이 있었다. 좀 엉뚱할 수도 있는데, 언젠가는 그들이 세계사를 주도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신학으로 전향하던 시기여서인지 처음엔 소련의 과학기술적 잠재력을 생각했는데 얼마 후에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혁명과 함께 러시아가 사회주의로 돌아선 것이 1917년이다. 그로부터 70년 후에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면서 그 사회주의로부터 돌아서게 된다.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혁명으로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의 70년을 ‘바벨론 포로 70년’이라 생각한다. 성서와 하나님을 등지고 지상천국을 만들어보겠노라고 혁명을 일으켰는데, 70년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서에 나온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70년과 그들의 사회주의 70년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의 대중적 심성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성서와 관련해 생각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파헤치는 측면에서 철저하게 성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파헤치려던 어두움은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 자신의 어두움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러시아정교회는 톨스토이를 파문했고 파문은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신을 고발했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자신을 고발할 수 있는 인재와 문학을 그들 안에 지닌 국가라면 언젠가 세계사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의 명상록에 이런 글이 나온다.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악이나 잘못에 대해선 크게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죄악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우성을 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고 싸울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의 형편을 잘 지적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남의 잘못을 찾아서 드러내고 외치는 일에 대해서는 대단한 열심과 놀라운 기술력을 보인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에게, 우리 편에 이런 잘못이 있다”라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을 고발할 양심이 사라져버린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전에, 우리의 굳어진 양심에도 페레스트로이카가 밀려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