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7월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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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반으로 뚝 접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전환점 7월이 왔다. 신록이 절정을 이루고 잦은 비가 내리는 이른바 우기인 장마가 한창인 달이기도 하다. 매일 비가 내리니 생명체들이 왕성하게 자란다. 텃밭을 점령한 뭍 생명들은 나를 끌어내어 그들과 마주서게 한다.

온갖 생명들에게 베푸는 신의 한 수가 장마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일주일 전에 칡넝쿨을 걷어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오디나무와 산수유를 위협한다. 온 산야 식물들을 다 덮어버릴 기세다. 정말 칡의 생명력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생존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잡초들 생명력은 또 누가 끊어놓을 수가 있을까? 그들 영역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에게 끈질긴 저항력을 보여주며 살아나는 생명력들이라니. 하지만 그들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명멸해 갈뿐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건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6월에 검붉게 타오르던 장미가 가고 이젠 수국이 한창이다. 자연이 신비로운 건 이음에도 있는 것 같다. 정월 매화부터 시작된 꽃들이 달마다 새롭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면 정녕 신의 조화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계절마다 달마다 새롭게 피어나며 이어가는 생명들이 있기에 그나마 팍팍한 인간 삶에 위안이 아닐는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수국 꽃무더기를 보면서 어릴 적 냇가에 핀 도채비 꽃을 떠올리는 건 또 어인 일인가? 청색과 옅은 자색 붉은 색을 오가며 꽃을 피우는 수국. 어릴 적 냇가에서 놀다 산수국을 본 아이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국축제까지 열면서 환호하는 세상이지만 이젠 마음속 도깨비마저 사라진다 생각하니 허허롭기 그지없다.

7월은 내 뜨락에도 찾아왔다.

봄바람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워 몇 번이고 지주목을 세워주고 정성을 들였더니 올해는 수세가 왕성하다. 드디어 꽃들을 달고 임금이 오시길 고대하는 듯하다. 내 뜨락에 있는 능소화이야기이다. 뿌리를 벽에 붙일만하면 떼어내고 또 떨어지고..... 바람이 능소화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어느새 튼실하게 벽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궁녀의 슬픈 전설을 간직해서일까? 자꾸 담장 너머로만 고개를 돌릴 뿐 담장 안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죽했으면 찾아주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다 담장을 기어올랐을까마는 지금 내 뜨락에는 그 꽃 능소화가 한창이다.

복숭아 빛깔을 띤 처자의 얼굴을 닮은 꽃. 옛날에는 궁궐이나 귀한 양반집에서만 볼 수 있던 능소화가 아닌가? 자꾸 담장 밖만 기웃거리며 자라는 녀석들이 밉기도 했지만 드디어 담장 너머로 화사한 꽃등을 달아놓았다. 집 밖만 기웃거리고 담장을 넘어가야만 꽃을 피워 요부(妖婦)의 환생인가 했더니 슬픈 전설이야기에 숙연해지는 꽃 이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시작 7월이다. 설레임으로 7월을 맞이하자. 설레임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소이기에 하는 말이다. 설레며 희망을 품고 꿈꾸지 않는 자가 어찌 삶을 노래할 수가 있으며 가을의 풍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태양의 계절 7월 초입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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