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落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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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첫 구절이다.

고충홍 전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달 말 퇴임사를 통해 12년간의 정치 생활을 회고하면서 이 시구를 떠올렸다. 자신의 뒷모습도 시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제8대 도의회에 입성한 뒤 내리 3선을 했다. 초선 의원으로 부의장, 제9대 복지안전위원장, 10대 행정자치위원장과 도의회 의장 등을 역임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면서 야인의 삶은 상월선사의 ‘월락불이천(月落不離天·달이 진다고 하늘을 떠난다는 것은 아니라)’이란 말로 대신했다. 그동안 도민과 지역구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지역 원로의 역할을 찾겠다는 것이다. 공성신퇴(功成身退·성취한 뒤에 머물지 않고 물러난다)의 여유가 느껴진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시 ‘낙화’에 나온다. 자연의 섭리에 스러져가는 꽃은 누구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로 사퇴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홍 전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에 심었던 이른바 ‘홍준표 나무’가 사라진 날이다. 홍 전 대표가 1조3000억원의 채무 상환을 기념해 2016년 6월에 심은 것이다. 환경을 탓해야 할지, 나무를 탓해야 할지, 첫 번째는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말라 죽었다. 2016년 10월에는 주목으로 교체했지만, 이 역시 고사할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4월에는 40년생 주목으로 다시 바꿨다. 이 역시 잎이 누렇게 변하는 등 제대로 생존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뽑히는 신세가 됐다.

홍 전 대표는 쉬는 동안 ‘당랑의 꿈’이라는 책을 쓴다고 한다. 당랑(螳螂)이 사마귀라는 것에 비춰보면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멈추려 한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정치 역정을 담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낙화는 끝이 아니다.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오를 수 없다지만(落花難上枝), 져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신록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가 정호승 시인은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라고 했다. 이래저래 선거 여운으로 ‘낙화’에 마음이 끌리는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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