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총리의 출산
여성 총리의 출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올해 37세의 재신더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얼마 전 첫 딸을 낳아 화제가 됐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만큼이나 엄마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현직 총리가 아기를 낳은 건 지난 1990년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에 이어 세계 역사상 두 번째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모든 걸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임신과 출산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임기 여성을 총리로 뽑았다면 총리가 아기를 낳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런 일로 바라보아야 정상이다.

지난 1월 임신 사실을 발표했던 아던 총리는 진통이 오기 직전까지도 티 안내고 총리직을 수행했다. 옛날 한국의 어머니들도 대개 그렇게 일을 하다 아기를 낳았다. 엄마가 된다는 건 그만큼 강인함을 필요로 한다. 아던 총리는 진통이 오자 배우자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인근 공립 병원으로 달려가서 아기를 낳고 일반 병실에 입원했다. 총리라고 해서 특별대우도 없었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보이지 않는 벽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운 사회의 한 단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지도자들이 특권층이 되지 않겠다는 각오만 다지면 어느 사회에서나 쉽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다.

아던 총리가 6주간의 출산휴가에 들어간 것도 특별하다. 총리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두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부총리에게 대행을 시키고 휴가를 갔다. 민주주의가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도보다 사람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일도 쉽지 않다.

아던 총리는 육아에서도 새로운 모범을 보이고 있다. 아기 아빠인 방송인 클라크 게이포드로 하여금 자기 일을 접어두고 집에서 아기를 키우도록 역할 분담을 했다. 게이포드가 요즘 한국 텔레비전에도 종종 등장하는 살림하는 남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남녀의 역할 분담에 벽이 없음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용기가 대단하다.

아던 총리는 앞으로 해외 방문을 하게 되면 아기와 게이포드를 대동하고 다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는 9월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도 그런 식으로 아기를 데리고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아기를 데리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아던 총리와 게이포드가 보여주는 이런 식의 역할 분담은 앞으로 현대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아던 총리의 정치적 멘토인 헬렌 클라크 전 총리가 결혼은 했지만 정치를 위해 자녀를 갖지 않았던 경우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법이고 한 발자국 앞서 나간 느낌이다.

개척자는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들의 참정권만 해도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계에서 처음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게 지난 1893년 뉴질랜드다.

여성들이 2년여 동안 끈질기게 벌인 캠페인의 결과다. 뉴질랜드 여성 총리의 출산을 보면서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가정에서의 위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우리 모두 곰곰이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