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디
불난디
  • 제주신보
  • 승인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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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구

며칠째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 조립식 패널로 어설프게 만든 방이라 그런지 낮에 흠뻑 받아드린 태양열 때문에 밤이 되어도 쉽사리 식지 않는다. 열대야가 깊은 밤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물며 시골도 이러한데 도시의 밤은 얼마나 더 힘이 들 것인가.

에어컨도 지속되는 더위에 지쳐 힘들게 돌아간다.

창고 앞 빈터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깔판 몇 개를 펴서 임시 평상을 만들었다. 대자리를 펴고 대자로 누워 팔베개를 하고 밤하늘을 보았다. 별이 등불을 대신하고 시원한 바람이 에어컨 바람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며 풀벌레 소리까지 귀를 즐겁게 맞아주었다.

무심히 허공을 바라보는 순간 별똥별 하나가 낮게 날아간다. 하늘에서 땅으로 섬광을 남기며 떨어지는 저 별은 우주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고개를 들어 다시 살펴보니 불난디 한 마리가 꽁지에 불을 켜고 이리저리 허공을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한두 마리씩 보이던 녀석이 금년에도 다시 날아왔거나 그 새끼가 어미를 대신하여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고향 모슬인 윗내끼上川에서는 여름만 되면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 아랫모슬인 아랫내끼下川에는 탈산망이 있고 그 오름에는 산소가 많았다. 장자못 빌레동산에 모인 어르신들은 장마철 우중충한 날씨에는 푸르스름한 도깨비불이 날아다닌다고 하였다. 말로만 듣던 도깨비불이 저런 모습일 것이다.

형들은 그 불을 쫓는다며 뛰어다니고 나는 다시 그 형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형들이 갖고 놀다 싫증나면 꼬마들의 차지다. 막상 갖고 보니 불빛도 사그라져 휘황찬란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개똥을 밟았을 때처럼 악취가 코를 찌른다.

불난디는 반딧불이과로 반딧불이 또는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애벌레는 물속에서 살며, 다 자라면 땅 위로 올라와 흙 속에 작은 집을 짓고 번데기가 된다. 알에서 성충까지 자라라면 보통 1, 2년쯤 걸린다. 성충 기간은 겨우 보름여 가량뿐이라 하니 매미에 비할 것은 아니나 너무 짧은 생을 살다가는 것이다. 노래를 불러주는 매미와 달리 아름다운 불빛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단어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하늘이 미물에게 하사한 배려였을 것이다.

예닐곱 마디로 되어있는 배 말단의 발광기에서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물질이 산화되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빛을 깜빡이는 것은 교미를 하기 위한 수컷의 신호이지만 주로 암컷이 빛을 내어 수컷을 유인한다.

깨끗한 하천과 습지가 많이 있어야 번식을 한다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서식처가 파괴되거나 환경오염으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고향은 제주도내에서 제일 길다는 천미천이 있고 그 내에는 늘 물이 오염되지 않은 물통이 많아 불난디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것이다.

마침 농장에 다니러 왔던 며늘아기가 불난디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한 번도 본적이 없다며 어디, 어디하며 뛰어 나온다. 사람이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그 몇 분 사이에 짧은 체류를 끝내고 과수원 저편 어둠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서른이 넘도록 책에서 보거나 듣기만 하였지 본 적이 없다하니 이는 어린 시절부터 밖에서 자연을 벗 삼아 친구들과 모여 놀기보다는 방안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 갇혀 살다보니 그리 되었을 것이다.

밤하늘을 은하수 광장처럼 많았던 그 불난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화처럼 들려오던 형설지공의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신세대들은 알고나 있을까. 요즘 한자 공부에 푹 빠진 아꼬운(‘귀엽다의 제주어) 첫 손자 원빈에게 이 네 글자를 가르쳐 주고 싶다.

어둠 속에서 불난디의 모습을 쫓다 보니 열대야도 사라지는 듯하다. 이제 밤도 깊어 밤이슬이 슬슬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좋은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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