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밧모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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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2018 러시아 월드컵 덕분에 TV에서 러시아를 소개하는 프로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저는 서민들의 휴식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다차(Dcha)라는 러시아식 주말별장을 소개하는 프로가 좋았습니다.

다차는 소박한 통나무집이 있는 주말농장으로 이것을 빼고 러시아의 일상을 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러시아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이곳에서 기거하며 농사를 짓고 휴식을 취합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다차로 향하는 차량 때문에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입니다.

저에게도 다차와 같은 작업실이 시골에 있습니다. 저 역시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습니다. 텃밭도 딸려 있고 초가집을 개조한 허름한 이 작업실을 찾는 일은 이제 제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제게 있어 작업실은 은신처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 작업실을 ‘달팽이집(蝸廬)’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말 3대 시인이었던 강위가 제주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를 찾아와 “달팽이집에서 10년간 가부좌를 트셨다(蝸廬十載跏趺膝)”라고 자기 스승에 대해 쓴 글에서 빌린 것입니다.

제주도 선비 이한우는 그 집에서 유배생활하는 추사를 보며 “천리 밖 남쪽 바다 초가집 한 채/ 밤마다 외로운 마음, 향 사르고 앉아/ 흐느껴 울 때마다 흰 머리털 느네(千里南溟一草堂 孤衷夜夜焚香坐 感泣頭邊白髮生)”라고 절망적인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작업실에서 흰 머리털이 느는 가운데 혼자 차를 마시고, 글을 씁니다.

저는 더 나아가 교통사고로 불편해진 다리 때문에 ‘와보(蝸步)’라고 ‘달팽이 걸음’이라는 뜻의 호(號)도 지었습니다. 그래선지 지인들이 ‘와보 선생!’하고 불러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달팽이 덕분에 제대로 사는 맛을 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애인은 자주 보면 버릇이 없어지고, 별장은 자주 가면 잡초가 없어진다’는 농담이 있듯이 한 주만 작업실에 가지 않아도 잡초공화국이 됩니다. 그래서 작업실을 자주 가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애인과 별장은 가지고 싶으나 가지면 머리가 아프다’는 또 다른 농담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업실에 가는 이유가 비단 잡초 때문만은 아닙니다.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를 아실 겁니다. 그는 ‘굴레를 벗은 자유로운 말’이라는 뜻의 ‘시마론’이라는 별장에서 온종일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자치단체에서 하수구를 별장 근처에 만들기로 결정하자 홧김에 그 집을 팔아버립니다. 그 후로 그는 햇빛이 작열하는 또 다른 은신처를 찾아 끊임없이 헤맵니다. 제가 작업실을 찾는 이유도 가슴에 늘 고통스럽게 간직한 하나의 은신처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유배생활을 하며 ‘요한계시록’을 썼던 곳입니다. 1520년, 마틴 루터가 가톨릭으로부터 파문을 받고 바르트부르크성에 은신하는데 그는 이곳을 ‘나의 밧모섬’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루터는 질병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근원적 질문과 대면하고 방대한 저작물들을 남깁니다.

루터에게 바르트부르크성이 그러했듯이 추사 김정희에게 제주도는, 로맹 가리에게 시마론은 ‘나의 밧모섬’이었으며 저에게 제 작업실 역시 ‘나의 밧모섬’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그런 은신처가, 자기의 유배지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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