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上梓) 뒤로 오는 바람
상재(上梓) 뒤로 오는 바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글을 쓰다 보면 작품이 쌓인다. 곳간에 그냥 재어 두려면 안쓰럽다. 속절없이 시렁에까지 얹어 있으니 이를 어쩌나. 세상 속으로 내보내려 안달복달하기에 이른다. 누구는 이름을 바위에라도 새기고 싶다고 했다. 표현하려는 것은 글쟁이의 본능이다.

등단해 스무 해가 넘도록 작품집 한 권 내지 않은 시인 작가도 있지만 특수한 경우다. 워낙 과작(寡作)이거나 명작에 집착하거나, 그도 아니면 좀 결벽하거나 할 것이다. 어느 시인에겐 160권이 넘는 저술이 있고, 60여 권의 작품집과 평론집을 상재한 수필가도 몇 있다. 생전 다작으로 유명한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은 시집만 70권을 출간했다. 문학을 향한 성실과 열정의 분출일진대 그런 집념이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놀랍고 놀랍다.

“글은 이름 석 자를 달아매는 것이지요.” 어느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을 일러 한 말이다. 나 같은 무명에게도 책에 이름을 매달려는 욕구가 왜 없겠는가. 작품이 있으면 어떻게든 책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길지 않은 동안 겪어 온 내 체험이다. 출판비가 문제될 수 있지만 강짜로 우겨 넣으면 어느 한도까지는 풀린다.

내 경우는 시와 수필 두 장르를 함께 짐 지다 보니 책을 내는 것도 모가치가 곱빼기다. 시집 수필집 동시 출판으로 간다. 어느 쪽을 밀어낼 것인가. 시울 붉혀 가며 깜빡거리다 눈 글썽일 것인데, 차마 떼밀어 내지 못한다. 그래서 몇 년 이래 동시출판을 이어 온다. 이번에도 시집 『텅 빈 부재』와 수필집 『마음자리』를 함께 상재했다. 시집 수필집 둘 다 일곱 번째다.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출판에 엔진을 장착해 주어 가능했던 일이다.

책마다 육필 사인하고 둘을 봉투에 넣어 붙인 뒤 독자들에게 부쳐 보내려니 힘겨웠지만 짜장 신났기에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막 우편집중국에서 돌아오니 마음이 물 써 바닥을 드러낸 어촌의 작은 포구처럼 쓸쓸하다. 내가 그 빈 바닥에 종선(從船) 한 척으로 휑하게 나앉아 있는 느낌이다.

여러분들로부터 축하의 전화와 문자가 답지한다. 93세 노수필가의 전화는 각별했다. 집으로 찾아오신다 하매 극구 만류하며 간신히 마무리했다. 전엔 메일이더니 이번엔 문자가 중심을 이뤘다.

“붓끝이 갈수록 날카롭습니다. 화수분처럼 솟아오르는 좋은 글 부럽습니다.”

“문득 선생님의 제주新보 칼럼이 생각나 검색해 보니 〈상재 소감〉이었습니다. 결말에 ‘혜존이 춘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곁에 두고 선생님의 살아감의 지혜들을 찾아보겠습니다.”라는가 하면, 또 하나, L 변호사의 글이 심금을 울렸다.

“두 권의 책과 선생님의 제자 사랑의 마음을 잘 받았습니다. 안부는 못 전하고 의미 있는 날은 무심코 지나가는데 아랫사람을 위한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허구한 날, 길을 나서지만 내 길엔 풀이 없어 황량하다.’고 하셨지만, 선생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제자와 문하생, 친한 선후배 그리고 일곱 권이나 되는 시집과 수필집은 그 어느 유명인보다 보람 있고 내실 있는 삶이라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수십에 이르는 문자를 받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웬 바람인가. 아, 내 글을 읽어 줄 독자 몇 사람은 있구나.’ 글은 계속 써야 할 것 같다.

비 그치면, 가까이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도로라도 걷다 와야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