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만병초
울릉도 만병초
  • 제주신보
  • 승인 2018.07.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옥선 수필가

칠월이다. 차일피일 풀 뽑기를 미루고 있던 화단 앞에 섰다. 비 온 뒤라 제법 선선하기에 큰마음을 먹었다. 풀을 뽑다 말고 톱풀과 구절초를 솎아낸다. 지나친 욕심으로 세를 불리는게 영 불편해서다. 뻐꾹나리도 나눔을 좀 해야겠고, 철포나리는 한곳으로 옮겨 심어야 겠다. 한참을 풀을 뽑다가 울릉도 만병초와 눈이 마주쳤다.

몇 해 전 울릉도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선착장 앞 좌판에 놓인 만병초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 있는 만병초와 벗이 될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녀석과 마가목을 데리고 왔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키 큰 만병초와 가까운 곳에 터를 내어주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내 기대와는 달리 녀석은 좀처럼 곁을 내어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윤기가 없는 잎사귀는 뾰족하고 까칠하기까지 했다. 뿌리를 내릴 생각조차 없어 보여서 마음이 쓰였다. 함께 온 마가목은 낯가림도 하지 않고 제법 튼실하게 자라 꽃도 보여주고 붉는 열매를 달았다. 바람 많은 쪽에 심었는데도 새 가지가 뻗어 나왔다.

제주 섬으로 이사 온 몇 해 동안 나도 그랬다. 해 질 무렵이면 이방인이 된 것 같아 쓸쓸했고 비행기만 봐도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그럴 때면 해안도로를 무작정 걸었다. 겨울에는 전에 없이 감기를 달고 살았다. 밤새 기침을 하느라 잠을 설치는 날에는 바람도 유난스레 창을 두드렸다. 걱정이 가득한 남편에게 의사는 삼 년쯤 지나야 제주의 바람에 익숙해질 것이라 했다. 그래야 기침이 덜할 것이라고.

자주 가는 화원에서 진홍색 꽃을 달고 있는 키 큰 만병초를 처음 만났다. 하나의 봉우리 속에서 터져 나온 대여섯 송이의 꽃들. 작은 우주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해 사월의 봄날은 더 화사했다. 그 꽃밭에 만병초를 한 그루 더 심고 싶은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었을까.

여기도 괜찮은 곳이라며 뾰족한 이파리를 쓰다듬고 나무를 토닥거린지 몇 해가 지났을까. 올 봄 드디어 꽃을 내어놓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만병초와는 달리 옅은 분홍빛의 꽃이다. 설익은 복숭아같은 꽃을 보며 짧은 봄날을 함께 보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짙은 분홍의 꽃을 달던 녀석이 전혀 꽃 피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잎사귀들만 내어놓을 뿐. 봄날의 찬사를 울릉도 만병초에게 고스란히 양보한 것 같다는 생각을 봄이 가도록 지울 수 없었다. 녀석은 ‘잘했다. 참 잘했구나’ 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생나무를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소나무는 옆의 나무가 아무리 가까이와도 이웃한 나무의 광합성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애쓴다고 한다. 소나무의 수관기피처럼 그도 처음 꽃을 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어린나무를 위해 자신의 봄날을 잠깐 접어 둔 것은 아닐까.

꽃이 지고 나자 그렇게 자라지 않던 울릉도 만병초가 쑥 자랐다. 날카롭기만 하던 이파리도 제법 둥그스름하다. 만병초 발 아래에 있는 풀을 뽑다가 괜히 이파리를 툭 건드린다. 울릉도 만병초가 씩 웃는 듯하다. ‘너도 고맙다. 키 큰 만병초야.’ 녀석도 따라 웃으며 이파리를 흔들어댄다.

바람 한 줄기가 한참을 머물고 간다. 여름 꽃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