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악’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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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져놓고 그것이 코끼리라고 우기는 이야기. 자기가 알고 있는 일부분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굴 때 쓰는 표현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산화·분업화되면서 처리 속도와 방식은 빨라지고 편리해진 반면, 다양해지는 욕구와 투명이라는 명분을 위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할 틈도 없이 일을 해치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던 중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담은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게 됐다.

아이히만이 재판정에 섰을 때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그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대인 분류 등의 행정 업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한 공무원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끝내 깨닫지 못하면서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다. 한나 아렌트는 책을 통해 역사 속 악행이 그들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에 일어났으며, 악원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나에게 충격적인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 또한 주어진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만 처리하고 있지는 않는지, 거대한 조직에서 분업화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업무가 조직에서 어떠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생각할 볼 일이다.

‘나 또한 악하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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