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과 재일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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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

지난 14일 학회 참석을 위해 머물었던 서울에서 우연히 ‘국민이 먼저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난민 배척을 호소하는 집회를 접했다. 본지(15일자)에 의하면 같은 취지의 집회는 소규모이지만 제주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집회를 접하며 재일동포로서 한때 일본 대도시에서 ‘조선인은 돌아가라! 한국인은 물러가라!’라고 외치면서 거리에 나선 재특회(在特會·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가 떠올라 암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고 힘든 삶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국민이 먼저다’라고 외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이상론을 내세워 난민 수용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난민배척을 부추기는 일이라 하겠다. 난민 수용 여부나 수용 방법은 난민들과 삶의 공간을 공유해야 할 주민의 눈높이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국땅의 편견 속을 살아 온 재일동포로서 이 문제에 누구보다도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재일동포는 역사적 형성의 특징으로 보아 ‘난민’이라기보다도 ‘이민’으로서의 성격이 짙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재일제주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오사카의 이카이노(飼野) 지역은 일본과 한국 간의 경계를 넘어 제주사람들의 생활권이 되어 도저히 난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생활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민과 난민의 구별은 그리 분명한 것은 아니다. 국면에 따라 이민이 난민이 되고, 난민이 이민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해방과 더불어 귀향길에 오른 수많은 재일제주인들이 4·3을 전후해 밀항이라는 수단으로 다시 일본에 되돌아왔다. 밀항은 4·3사건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단순한 생활고로 일본에 밀항하는 이가 늘어나지만,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연좌제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일본에 건너온 밀항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오늘날로 치면 분명한 정치난민인 셈이다.

일본정부는 1952년 독립을 회복함과 동시에 해방 전부터 일본에 머물러 왔던 재일동포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하면서 재일동포 전체가 무권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래도 외국인등록을 가져 안정적이지는 않아도 일본에 계속 거주하고 다른 권리는 없어도 유일하게 공적 부조만큼은 수급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밀항으로 일본에 온 제주인들은 완전한 무권리상태로 관권의 단속에 걸려서 강제 송환당할 위협에 늘 시달려야 했다.

이런 재일제주인들이 겪어 온 처지에 비추어 지난 7월 1일 천주교 강우일 제주교구장이 발표한 사목서한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700만 재외국민을 떠올리면서 재외 동포가 ‘그 나라 국민에게 배척당하고 외면당해 내쫓긴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겠는가’라고 난민배척을 나무랐다. 특히 ‘4·3의 재앙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이 많다’고도 언급해 감명 깊다.

난민 배척의 기운이 높아지는 반면 사목서한이 그렇듯이 한국사회가 상당히 성숙된 모습도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 느껴진다. 예멘인들의 취업보장이나 도민 불안 해소, 난민 심사기간의 대폭 단축 등 여러 행정부처의 대책도 국제적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예멘 난민을 최초로 보도하면서 난민들의 실태와 생활상을 시시각각 알려준 본지의 보도도 탁월하고 훈훈하기도 하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참에 ‘제주신보’의 예멘 난민보도가 ‘이달의 기자상’ 지역 취재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약소하나마 ‘제주신보’에 글을 실어온 필자에게도 영광이고 반가운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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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 2018-07-18 19:47:03
난민대책 국민행동 카페입니다 https://cafe.naver.com/refugeeout/15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