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과 돈스코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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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보물’이라는 말에는 동심이 깃들어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게 되면 보물찾기에 가슴이 설렌다.

바위틈에, 혹은 나뭇가지에 보물 내용을 알려주는 쪽지가 그것이다.

보물찾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쪽지 찾기에 바쁘다. 키보다 몇 배 높은 소나무에 올라 두리번거리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이 체면상 낑낑대며 나무에 올라 쪽지를 숨기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1970년대에는 쪽지를 찾아도 보물이 연필이나 노트가 대부분이었지만 횡재한 느낌은 오래간다.

이러한 유년의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도 ‘보물’이라는 말에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보물선으로 알려진 선체가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05년 5월 29일 일본 함대의 포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또다시 일본군에게 포위됐다가 침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주인공이다.

당시 돈스코이호 함장은 함선의 설계도와 군자금을 일본에 넘길 수 없다며 160여 명의 선원들에게는 울릉도로 가라고 명령한 후 자신은 군함과 함께 침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체 발굴업체인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150조 규모의 금괴와 금화 5500상자(200t)가 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신일그룹 측은 탐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소유권 등기와 선체 인양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지금까지 발굴 보증금 납부와 발굴 승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제주지역에서도 금괴 보물찾기가 있었다.

전국의 탐사가들이 1983년부터 6차례에 걸쳐 제주시 산천단 곰솔 주변에서 금괴찾기에 나선 바 있다.

일본군 제58군사령부가 중국 등지에서 약탈한 금괴를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주둔했던 곰솔주변에 매장했다는 소문을 믿고 발굴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2006년 4월 금성개발이 5개월에 걸쳐 탐사를 했으나 금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곰솔 주변 금괴 찾기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문화재청이 발굴기간이 끝남에 따라 추가로 현상변경 신청을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어른들이 찾는 보물은 그리 쉽게 품을 수 없는 모양이다.

돈스코이호에도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은 모른 상태다.

꿈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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