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이 제주도라니
그 섬이 제주도라니
  • 제주신보
  • 승인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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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울수록 눈에 안 들어오는 것들이 많다. 일례로 눈은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다. 거울을 빌리거나 타인의 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아야 한다. 숲속에선 숲이 보이지 않고,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는 말도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외양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타인이란 거울에 비췄을 때가 객관적이다. 마음에 끌려 주관적인 발걸음을 떼어 놓다 보면 소소한 잘못은 물론 잘못 들어선 길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의 거울이 되어 주는, 곁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진정 고마운 사람이다.

일전에 어느 신문 칼럼의 제목에 시선을 빼앗겼다. ‘가고 싶지 않다, 그 섬에’. 어느 섬일까 하는 호기심은 일순에 사라졌다. 내가 나고 자라고 생활하고 있는 제주도라지 않은가. 썰렁한 가슴으로 동경하는 휴양지에서 저주의 대상으로 변해 버린 이유를 살피며 읽었다.

아름다운 풍치는 사라지고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대는 번다한 도시의 모습을 지적한다. 짜증을 내뿜는 교통체증과 곳곳에서 풍광을 가로막는 건물들은 차치하고라도 사나운 인심과 바가지 상혼이 넌더리나게 했단다. 대표적으로 제주공항 인근의 한 렌터카 업체의 일방적 횡포를 지적했다. 렌트한 승합차 반납 시간을 조금 넘겼다고 하루치 임대료를 물리는 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가상의 임차인이 차를 사용하지 못함으로 발생한 위약금으로 하루치 임대료를 더 요구했다니….

나는 그쪽의 규정과 실태를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다른 지방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면 신발의 먼지까지 털며 다시는 그곳으로 머리를 돌리지도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 고장은 소박한 인심이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일상의 악다구니가 이렇게 인정을 메마르게 하다니.

토박이란 말이 무색하게 관광객이 몰려드는 자연경관을 못 본 곳이 수두룩하다. 삶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경물들이 몸속에 녹아들어 그 매력을 상실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서야 간혹 외지의 경치를 둘러보고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곤 한다.

월초에 향우회원들과 함께 비양도를 다녀왔다. 초행길이어서 이어지는 설렘 속에 둘레길을 걸었다. 해변은 비교적 깨끗하다. 잔잔한 물결에 물질하던 어머니의 옛 숨비소리가 살아난다. 이름 모르는 꽃들이 앙증맞게 웃고 조그만 나비들이 끊임없는 날갯짓으로 하루를 넘고 있다.

나무데크 계단을 밟으며 비양봉을 오른다. 얼마 후 폐타이어 줄이 깔린 길이 나오고 이대가 터널을 만든 곳을 지나니 맨땅이 드러난다. 푸석한 속살의 진통과 푸나무를 키우지 못하는 서러움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 온다. 염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나 배설물은 여기저기 흩뿌려 있다.

자연에 걸터앉은 눈엣가시 같은 등대를 피하며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심신의 찌꺼기가 사라지고 기분은 부푸는 풍선이다. 자연의 품은 항시 어머니인 걸. 비양도, ‘어디서 날아와’ 그 이름을 얻었을까. 사람들이 싫어졌다고 다른 곳으로 날아갈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누구든 다시 오고 싶은 섬, 그런 섬이 되었으면. 자연과 문화를 보전하고 인심을 키우는 데 모두의 힘이 모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