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생가에서
윤동주 시인 생가에서
  • 제주신보
  • 승인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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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실

눈 닿는 곳마다 옥수수 밭 천지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들판을 지나자, 해란강을 낀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더니 2층 버스가 멈추어 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 호선형 구릉이 병풍처럼 마을 뒤를 두르고, 반대편으로 큰 바위 몇 개가 창공에 우뚝 솟아 절경을 이룬 곳. 드디어 윤동주 생가에 도착했다.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명동촌.

봄이 오면 마을 야산에 진달래, 산앵두,함박꽃들이 만발하여 온 마을이 꽃향기 속에

파묻히고, 겨울이면 은색 찬란한 설야에 노루와,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왔던

마을이라 했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 절반인 14년을 이 자연과 벗 삼아 시심을 키우며, 아름답고 풍요한 시절을 보낸 명동촌. ‘동방, 곧 한반도를 밝히는 곳.’이라는 이곳은, 우리의 농촌 풍경과 흡사했다.

한글과 한자로 화강석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표지석 앞이다.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니... 우리말과 글을 빼앗기고도 꿋꿋이 한글로 시를 썼던 그가 사랑했던 고향은.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

동행한 학생들이 왁자지껄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나무 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쪽에 굳게 닫힌 낡은 건물 (명동교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자, 넓은 정원에 크고 작은 시비詩碑들이 일행을 반긴다. 주로 동시들이다. 어린 시인의 얼굴 위로 비둘기, 종달새, 병아리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조개껍데기가 다물었던 입에서 물을 토해낸다.

 

무얼 먹고 사나

윤동주

 

바다에 사람

물고기 잡아먹고 살고

산골에 사람

감자 구워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시인은 많은 동시를 썼던 중학교 시절부터 별나라 사람들이 많이 걱정 되었나 보다.

시를 읽으며 발걸음을 옮기자 제법 규모가 큰 기와집이 마당을 지키고 서있다.

옷깃을 여미고 문을 열자 방이 나온다. 다시 안쪽 문을 열자 대청 마루대신 큰 가마솥이 서너 개 앉아 있는 부엌이다. 부엌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들을 배치한 것은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한, 이곳 사람들의 지혜로운 집 구조라고 했다. 금방이라도 가마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19171230, 결혼 팔년 만에 준수하고 건강한 윤 씨 댁 장손이 태어나던 날,

이 가마솥 아궁이에서는 끊임없이 장작불이 타 올랐으리라.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명동으로 이주한 후, 그곳 처녀와 혼인하여 윤동주를 낳은 윤영석, 김용 부부. 그 불꽃 앞에서 해를 떠 올렸을까. 아기의 아명은 해환이었다. ‘ 해처럼 빛나거라. 해처럼 빛나거라.’를 중얼 거리며 툇마루로 나왔다.

눈앞에 언젠가 보았던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이 마당 가득 떠오르는 게 아닌가.

조그맣고 하얀 제단 아래쪽에 놓여있는 영정사진. 제단 양쪽으로 흰 두건을 쓰고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과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매고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도열해 있다. 애지중지 하던 아들의 주검을 일본 형무소에서 들고 와 장례를 치루는 부모의 애끓음. 며칠을 울부짖었던가. 그들의 숙연한 얼굴위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들이 고개를 든다. 일본 식민 통치의 가장 포악하고 암담한 시기에 태어나, 고요히 자아를 응시하며 밤하늘의 별을 헤었던 온화하고 조용한 영혼의 소유자. 빼앗긴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고자 저항의 몸짓을 하던 시인의 장례식 사진. 검정리본 아래 시인의 얼굴은 해맑기만 한데... 그동안 무심코 외웠던 그의 시어들이 뼛속 깊은 아픔의 옷을 입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흐른다.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중략)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중략)

내가 사는것은 ,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감았던 눈을 뜨니 70여 년 전 장례식을 치렀던 마당의 파란 잔디위로 7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 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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