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엄마
가짜엄마
  • 제주신보
  • 승인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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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선 수필가

모처럼 찾은 친정집은 허전함으로 나를 반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소소한 물건들이 모두 낯설다. 편안하게 몸 둘 곳이 없어 옥상에 올라보니 뒤란으로 이어진 채마 밭에 시선이 머물며 아스라한 유년 속의 기억하나가 마음을 잡는다.

내 나이 여섯 살의 따스한 봄날,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란 팝콘처럼 어미의 날개 아래서 병아리가 터져 나왔다. 어미는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돌보느라 둥지를 비웠고, 진종일 지켜보던 나는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알 하나가 남아있었다. 병아리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미가 너무 무심하게 그냥 두는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몇 번이나 둥지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려 보았으나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계란의 속이 궁금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억지로 툭! 쳐서 알을 깨고 말았다.

 

졸탁동시(啐啄同時)”

섭리나 이치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거기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병아리가 온 몸이 젖은 채 억지로 태어난 세상과 마주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계란 속으로 넣을 수 없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닦아주고 어미 닭에게 데려가니, 데면데면 낯선 얼굴을 하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것이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밖에 두면 탈이라도 날까 두려워 방으로 데리고 온 뒤, 쌀을 빻아 먹이를 만들고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 그물로 된 체를 덮어 집을 만들어 주었다. 저녁 내내 삐약~ 삐약~ 거리며 울부짖는 바람에 녀석을 이불 속에 넣어 어미 품처럼 안아주느라 밤을 하얗게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린 나는, 순간의 궁금함을 참지 못해 준비되지 못한 병아리 엄마가 되었고, 녀석은 발자국 마다 따라다니며 삐약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자식이 된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들 보다 제법 작았고, 어딘가 온전하지 못해 행동이 느렸다. 진짜엄마처럼 해 줄 수 없었으니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을 무대로 춤추는 나를 따라다니다가 나의 뒷걸음에 밟혀 다리마저 부러지고 말았다. 녀석은 삐약삐약~ 목이 터져라 울었고, 나 역시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울고 있으니, 아버지가 약상자를 들고 와서 치료해 주셨다. 시일이 제법 흘렀음에도, 녀석은 여전히 내 방에서 잠들고 서슴없이 이불에 응가를 하며 낮에는 마당에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가짜엄마인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없을 때는 엄마가 부엌 한 편에 집을 만들어 주어 놀게 해 주셨다. 어미 닭 근처에 가면 어미가 녀석의 머리를 쪼아 상처가 날 정도였기 때문이다. 좀 부실하고 약간은 정상적이지 못하였지만,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나의 자식이었다.

봄 끝자락 어느 날, 엄마를 따라 과수원에서 꽃 한 움큼 꺾어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사랑채를 돌아 들어오는 나의 발자국 소리에 엄마빠약~을 더욱 크게 외치며 부엌문틈 사이로 빠져나와 나를 반겨주는데, 내가 삐약아~ 삐약아~ 하면서 연신 불러도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집을 한 바퀴 다 돌아도 흔적을 알 수 없던 녀석을 먼저 발견한 건 엄마였다. 사랑채 아궁이 위의 커다란 솥 안에 빠져 죽은 채 .

엄마는 아궁이에 쓰는 부삽을 들고나와, 호박잎으로 녀석을 감싸 주며 나에게 묻어주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부삽을 받아 쥔 나는 채마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감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서 묻어주고, 두 손으로 주변의 흙을 모아 봉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곁에 돌비석 하나를 세우고, 여섯 살 난 가짜엄마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노을이 내려앉은 친정집 옥상, 그곳에는 반세기를 지나온 가짜엄마가 보이지 않는 어떤 영혼의 끌림으로 자식의 이름을 불러본다. “삐약아~ 다음 생에는 내가 너의 자식이 되어, 어리석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가없는 사랑으로 너와 마주하고 싶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