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오늘날 자녀의 효도, 부모의 내리사랑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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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주 화장률 70% 육박…실용 중심으로 바뀌는 유교식 장례
‘제사의 간소화’로 합제 지내는 집안 늘어…납골당 안치 선호해
제주도 제사상의 모습. 각종 과일과 술잔, 술병이 눈에 띈다. 민속자연사박물관 자료 사진
제주도 제사상의 모습. 각종 과일과 술잔, 술병이 눈에 띈다. 민속자연사박물관 자료 사진

시대가 변하면 가치도 변한다

시대의 변화가 풍음(風音)처럼 빠르기만 한데 장법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장을 선호했었고, 상여를 사용해 장지(葬地)까지 운반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3년상을 1년상으로 행하는 상례의 변화도 있었지만, 2000년 이후 화장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면서 지금은 화장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교의 전통적인 장례방식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을 자각했고, 제도적 계몽의 노력이 있었다.

제주도 화장률은 200842.5%, 200945.2%201564.2%, 201667.7%, 지난 201768.9%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어떤 의례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돼야만 활발하게 행해진다. 조선시대와 같이 효와 충을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권장하면서 효자와 열녀를 포상하고 사회적인 우러름을 받게 하는 시대에서는 당연히 상장제례는 왕실·사대부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넘어서는 풍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처럼 산업의 변화, 전문 직종의 확산, 시간 임금제 확산, 근로시간 단축, 독신의 증가, 묘지용 토지 확보의 어려움 등이 있기에 그것에 적응하려면 시간, 경제적 비용,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소위 후기 산업사회로 진행하면서 사람들은 더 실용적으로 되고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격체로 변하고 있다.

결국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의례는 어쩌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사의 변화

요즘 제사를 한번 되돌아보면 의례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서양 종교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장법이나 제사가 간소하다는 것도 있었다.

연고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전통적 장례 방법을 치르지 못하는 것은 큰 고민거리였다.

교회식 장법은 전통 상장제례보다 부담이 덜 가 최후의 시간이 돼도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홀가분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제사의 시대 변화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대개 요즘 제사는 8시 혹은 10시에 지내는 가정이 많다.

한 날을 잡아 한꺼번에 합제(合祭)를 지내는 집도, 또 부모님까지만 제사하고 선조들은 지제(止祭) 하는 집안도 많다.

장례 또한 화장한 후 평장이나 수목장을 하거나 납골당으로 모시는 것이 대세다.

요즘 공동묘지나 가족묘지를 조성한 곳을 가보면, 역대 조상들을 화장해서 가지런하게 유골을 묻고 비석 겸 상석처럼 평장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앞으로 있을 묘지 관리의 어려움을 미리 내다본 생각 때문이다. 1년에 한 번뿐인 벌초라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묘지를 어떻게 관리하랴.

전통 예법으로 보면, 맞는 것이 제대로 없지만 모든 결정은 결국 산 자들이 하는 것이다 보니 죽은 자는 원통해도 할 말을 못 하는 것이다.

그저 후손에게 처분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은 자의 설움이기도 하다.

즉 망자의 입장에서는 위해 주면 고맙고, 안 위해줘도 어찌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오늘날 효를 보는 시선이 불편하기만 한 것은 효도하는 자식의 행동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의 수준을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술병과 술잔을 동시에 들고 있는 동자석.
술병과 술잔을 동시에 들고 있는 동자석.

효자의 심정을 석상에 담다

김녕의 한 가족 묘에는 가선대부행명월만박처근, 배남원조씨부좌(嘉善大夫行明月萬戶朴處謹 配 南原趙氏祔左)라는 비석과 함께 두 기의 동자석, 망주석이 있다.

박처근의 호는 영암(瀛巖), 계출(系出)은 밀성(密城)이다.

(憲宗) 정미년(丁未年, 1847) 1129일에 태어나 갑인년(甲寅年, 1914) 418일에 생을 마쳤다. 원래 구좌읍 덕천리 어대오름(御帶岳) 북쪽 군자수(君子水) 지경에 무덤이 있었으나 시대 변화의 바람을 타고 김녕리로 화장한 후 평장을 했다.

박처근 부부 묘에는 자손의 심성을 잘 보여주는 석상이 있다.

한 동자석은 술병과 술잔을 동시에 들고 있고, 맞은편 동자석은 쟁반에 놓은 과일을 들고 있다.

필자는 석상을 볼 때마다 조상을 생각하는 자손과 조상 자신의 마음을 함께 읽는 데 조상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석상이 있는가 하면, 과거 급제를 바라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라는 조상의 메시지도 담겨있기도 하다.

사실 효라고 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위한 것도 있지만, 반대로 그 효성에 감응(感應) 하여 조상이 자손을 위하는 것, 즉 자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진정한 효라면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위해서 대를 이어주는 것 또한 효의 정석이었다.

박처근 부부의 동자석의 표현된 대로 제사는 조상을 위한 것이다.

기일(忌日)에 제사를 지낼 때 과거에는 축문을 읽었는데 대개 축문의 내용을 보면, “세월이 흘러 OOO이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모하는 마음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맑은 술과 음식으로 제사를 올리니 흠향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같이 한 집에서 지내던 조상을 기리는 것이 제사의 참된 본질인 것이다.

망자의 무덤 앞 동자석에 술병과 과일을 새긴 것은 자신의 조상에게 늘 제사하는 심정을 잃지 않으려는 평상심의 모습이다. “조상 없는 자손은 엇나(없다)”, “손은 산천에서 내운다(낸다)”라는 제주의 속담은 바로 계보를 잇는 말이면서 바로 조상의 음덕(陰德)이 닿아야 훌륭한 자손이 태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술잔과 술병을 동시에 들고 있는 조면암 동자석은 기쁜 표정을 하고 있고, 과일을 들고 있는 동자석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호로병 모양의 술병과 잔대를 공손하게 받쳐 든 모습이 제사를 거행하는 모습이다.

과일을 들고 있는 동자석은 매우 보기 어려운 석상이다. 대개 한 동자가 술병을 들면 반대편 동자는 술잔을 들고 있다. 그리고 두 기의 동자석 모두 술잔과 술병을 한 손에 하나씩 든 모습이 많다.

술잔을 올리는 것은 조상의 뜻에 따르겠다. 조상을 기리겠다는 효의 뜻이기도 하다.

()의 의미에는 이루다’. ‘좇다’, ‘조장하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술은 성취의 뜻이 들어있기도 한데 술 사겠다. 술 한잔하자는 말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뜻을 이루었을 때 신이 나서 자축(自祝) 하거나 상대방의 성사(成事)에 축하하는 의미, 또는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된다.

술은 허신(許愼)이 말한 대로, “인성(人性)의 선악을 조장하기도 한다”, 술이 좋은 점은 좋은 분위기를 반들기도 하지만 험악하고 추한 일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조상에게 바치는 술은 맑은 술淸酒이 돼야 하는 데 맑은 술은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예의를 갖춘 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주는 제사용 술로 알려졌다. 술은 궂인 것(악귀)을 씻는 소독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을 들고 나서 소주로 손을 씻는데 그때 궂인 것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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