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서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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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여름은 고단하지만 성스러운 계절이다. 꽃과 유실수는 쉼 없이 물을 길어 올리며 햇빛을 저장해,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내는 숨찬 나날이 이어진다.

꽃은 자체로 감동이다. 머뭇거리지 않고 금방 다가갈 수 있는 게 꽃만이 갖는 친밀감이다. 낯선 거리를 걷다 도로변에 놓인 화분들은, 금세 서먹한 기분을 풀어준다. 제라늄이며 피튜니아, 한련화가 삭막한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 저마다 개성을 지닌 것들이 화분 속에서 옹기종기 조화를 이루며 지나는 이의 눈길을 붙든다. 소소한 것들이나 가슴이 팍팍한 도시인들에게 여유와 웃음을 선사하고, 경직된 감정을 느긋하게 풀어 주는 가교 구실을 해 준다. 곁의 가게 주인이 목말라 하는 꽃에 물을 주는, 한낮 폭염 속 배려가 내 갈증을 풀어준 것처럼 시원하고 흐뭇하다.

아파트 마당으로 나서면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게 즐겁다. 화단에 꽃씨를 뿌려 틈틈이 가꾸는 조용한 손길이 있다.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봉사가 주민들에겐 큰 선물이 된다. 더위에 지친 꽃들에게 소나기처럼 물을 뿌리는 경비실 아저씨. 풀을 뽑아 주는 청소 아주머니의 수고가, 봄부터 가을까지 이웃들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다 .

우리들은 일상에서 많은 것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흘려보낸다.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발등 채면서 걷는 상쾌함, 저녁노을을 안고 한풀 꺾인 열기 속에 집으로 돌아올 때의 뿌듯한 충만감, 땀을 씻고 시원한 돗자리 위에서 뒹굴며 보내는 휴식. 때로는 좋은 친구와 도란도란 또는 홀로 한두 시간 산책을 즐기는 여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거나, 사랑하는 가족과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에 볼이 미어지도록 씹는 맛, 여름이라서 더 재미나는 것들로 일상의 소박한 행복이다.

나이 들어가며 행복하다는 것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빚는 감정이다. 형체가 없으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창한 것도 아니다. 늘 곁에 있어 잡을 수 있는데, 무심해 지나칠 따름이다. 타인을 바라보며 비교하는 시선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바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된다. 높은 것만 우러르다 정작 발밑의 보석을 보지 못할 뿐, 얼마든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것들이다.

일상에서 늘 안고 사는 게 스트레스다. 잘 다스리면 자신을 성숙한 단계로 발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일종의 자극제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다. 그쯤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성찰의 순간이다.

연일 더위로 숨 가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여행을 가거나 더위를 피해 서둘러 집을 떠난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나선 길, 돌아올 때는 맑은 영혼으로 가벼이 돌아와야 일상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 가방도 헐렁하게 채우고 마음의 짐도 가볍게 떠날수록 좋다. 멀리 떠날 게 아니라면 가까운 곳에서도 휴식을 취할 곳은 많다. 휴가란 고단한 심신을 쉬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닌가. 남들 따라 하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휴식은 무엇인가를 찾는 게 중요하다.

소확행(小確幸). 요즈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큰 것에서 작은 기쁨을 얻기보다,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여름나기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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