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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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능자 수필가

장례식 전날, 조문객 중에 60대로 보이는 노신사가 영정 앞에 엎드려 오열하는 것이 아닌가. 장례식장은 더욱 숙연해지고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 신사는 오라버니의 제자였다.

오라버니가 중학교 수학 교사 시절, 수학 시험지를 집에 가지고 와서 채점할 때 심상치 않은 백지 시험지 한 장을 발견했다. 시험지에는 빵점 동그라미에 얼굴을 그려 놓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 그 옆에는 큰 글씨로나의 원수 수학!”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뭐 이런 학생이 다 있어!” 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오라버니는 요놈 참 맹랑한 놈이네!” 하고 웃었지만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수학이 원수라고 한 것은 스스로 수학 포기생이라고 자조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수학 공부에 대한 간절함을 역설적으로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것인 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학이 오죽 어렵고 답답했으면 이런 메시지로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까? 오라버니는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렇게 수학 학습에 대한 상실감과 자포자기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오라버니는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통 없는 배움은 없다.”고 했다. 배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자 역시 자아실현을 위해서 부단히 자기를 부인해 나가면서 학습하여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라버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상업전문학교를 마치고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오라버니는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였고 표현력이 부족하여 학생들과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칠판 가득 수학 문제를 풀어 놓고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결과는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은 당신 탓으로만 돌리고 교사직을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나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문제가 더 심각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오라버니는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가 낮고 목표의식도 없어 전반적으로 수학 학습 의욕이 저조한 상태를 늦게 서야 파악하게 되었다.

수학 과목은 다른 교과와 달리 위계가 확실해서 전 단계 내용을 모르면 다음 단계학습에 지장을 초래한다. 다시 말하면 선수 학습이 부족하면 후속 학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라버니는 절치부심 끝에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기초 학력부터 진단 해 보았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지도를 하였다. 수학 포기 학생도 기초학력 정착으로 수학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오라버니는 그 제자가 아니었으면 고여 있는 물처럼 정체된 삶을 살았을 것이며, 교육방법도 어제와 오늘이 같고 쳇바퀴 돌 듯 변함도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늘 말씀 하셨다. 그리고 당신을 변화 시킨 것은 나의 원수 수학이라고 회고 하면서 시험지에 그린 제자의 얼굴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러 살아가는 나날 문득문득 떠올라 혼자 미소 짓곤 하였다.

교사는 가르치는일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교단에 서게 된다. 그러나 교사가 아무리 잘 가르쳤다고 해도 그 성과는 학생의 변화를 통해서 입증할 수밖에 없다. 학생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고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학생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문을 마친 제자는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그 당시 선생님의 손길이 없었으면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며 패덕한 사람으로 전락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라버니는 제자와의 관계에서 한 사람의 인생까지 바꾸는 선생님이자 스승이며 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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