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유배를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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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본격 피서철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습니다. 그래서 국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에 영조 때 윤기는 “봄철이 되어 꽃이 피고 버들가지가 늘어지면 놀러 나가려 하고, 가을철이 되어 단풍 들고 국화꽃 피면 구경하러 나선다. 여름철의 짙은 숲 그늘 등 이런저런 풍경마다 곳곳에 미친 듯 사람이 몰려든다”고 비꼬았습니다. 오죽했으면 “곳곳에 미친 듯 사람이 몰려든다.(處處如狂)”고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미친 듯 몰려드는’ 경향은 요즈음 더 심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주거지가 관광지화해 거주민이 떠나는 현상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나, 수용 범위를 초과한 관광객이 몰려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인 ‘오버투어리즘’ 등입니다.

이러다보니 ‘관광객 때문에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시위까지 벌어질 정도입니다. 바로 우리들 때문인 것입니다. 이 같은 과잉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불안사회’의 특징이라고 시인 오민석은 지적합니다. 이런 불안을 이겨내려면 “다른 길과 다른 가치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길과 다른 가치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하려면 혼자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방에 갇혀서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도 혼자 있는 동안 “갈수록 게으름에 익숙해져서 경조사도 폐하고 혹 며칠씩 세수도 않고 혹 열흘간 망건도 쓰지 않고”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잠이 오면 자고, 깨면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막 배운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어쩌다 친구가 술이라도 보내오면 마시고 취하기도 하면서 여름을 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두지 않고, 몸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하자는 대로 유유자적하게 지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동안 ‘다른 길과 다른 가치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박지원은 이용후생학(利用厚生學)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쓸쓸하다고 합니다. 이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쓸쓸비용’을 지출합니다. 이것은 사실 안 써도 되는 비용인데 혼자인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쓰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려동물에 대한 지출입니다. 실제로 1인가구를 중심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관련 시장도 팽창 중입니다. 이렇게 쓸쓸비용을 지출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고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유유자적하게 보내면서 쓸쓸함을 이겨내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그래선지 오로지 쉬는 것이 목적인 ‘감금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갇혀서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휴가를 슈가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피곤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방 안에 갇혀 책이나 읽고, 별의별 생각을 하며 뒹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셀프유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감금 휴가나 셀프유배를 하는 동안 놀랍게도 ‘다른 길과 다른 가치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심신은 오히려 더 건강해지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유배 와서야 세상사 끊고 기쁨 얻었네(謫來喜世情)”라고 했던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말은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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