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죽음
슬픈 죽음
  • 제주신보
  • 승인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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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영혼의 성장이 어디까지일까.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위를 가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환생은 소중히 부여받은 책임이다. 일각의 시간이라도 낭비가 없어야 하며 지나온 것에 아쉬움은 숙제로 남긴 채 거듭나야 한다. 삶의 질이 아닌 어떻게 살았느냐에 기준을 둬야 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다. 자유의지에 목표를 세우며 어떤 부모를 택해야 할지 결정한다. 다음 생을 준비하는 영혼과 교감을 통해 그의 흔적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소외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의사가 되길 원했으며 좋은 환경 덕에 꿈을 이루었으나 부와 명예에 길들어 가난을 미워했으며 남과 다르다는 이기심은 마음의 빚이 되어 오랜 기간 자숙의 기간을 거쳤으며 사랑하고 존경받는 자신을 그려본다며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 각오에 용기를 가지라는 위로를 나누었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들었다. 이혼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신세 한탄을 하는 친척분이 계셨는데 죽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다녔는데 모진 냉대를 받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할 형편이기에 화장하였으나 억울함이나 풀어달라는 당부에 흔쾌히 승낙했다. 대개 자살이나 타살일 경우 모습을 보여주길 극도로 싫어하며 표정에는 웃음조차 지워낸다.

한참이 지난 후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땅 꺼지는 한숨을 토해냈다. 본인은 이런 사례가 처음이 아니었으며 반복이란다. 그전에도 이런 상황을 이겨야 행복을 만들 수 있었다는 단순함을 알았으나 또다시 시련과 고통 앞에서 못난 행동을 한 채 누구도 돌보지 않는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한다며 뒤늦은 후회를 남겼다. 거칠고 힘든 일을 하며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어 주변으로부터 지탄과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가정은 나 몰라라 밖으로 나가 자식은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른 채 일 년에 두어 번 집에 얼굴을 비추는 아버지와 인정 따위는 남의 일이라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분란을 조장하며 욕심은 끝이 없어 돈 생기는 일에는 지는 법이 없는 어머니를 통해 이들과 어우러져 과거의 그릇됨을 보완하려 했으나 언제부터인지 닮아가고 있었으며 누구 탓 할 수 없는 실수를 인정한다며 아름다움이 참된 복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자녀의 미래에 대한 간섭과 꾸지람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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