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꽃 피면 양반 모여 신선처럼 시도 쓰고 술도 마시고
웃음·해학 담긴 '배비장전' 무대···시간 흘러 오늘도 노래
喚仙臺
萬壑乾坤大
石門日月閑
曾云無特地
其箇有神山
花老巳春冬
岩賞太古歡
戛然鳴發意
知是在仙間
己亥 春 金永綬
환선대
깊은 골짜기는 천지의 위대함이요
견고한 돌문은 해와 달의 한가로움이라
일찍이 일컫기를 배필 없던 삼신인의 땅
그것은 바로 신령스런 산이 있음이라
꽃 시들어 봄은 어느새 겨울로 바뀌어도
바위는 여전히 태고의 기쁨 지닌 채 있다네
알연한 학 울음소리 품은 뜻 잘 울려주니
이런 이치 깨달음 선계의 경지 들어섰음이라
기해년 봄 김영수
김영수의 오언율시 ‘환선대’ 전문 (역해 현행복)
“엿날부터 이 방선문(訪仙門)에 봄이 왕 곱닥 꽃덜이 피어가민, 양반덜이 이디 방선문에덜 모다정예, 신선ᄀᆞ치 시를 썽 읊으곡 술 먹으멍 놀아났젠 헙디다. 우리덜이 잘 아는 ‘배비장전’, 그 장소도 이디랜마씸! 내용덜은 잘 알암지예? 사또영 이 놀레 갓단, 이녁은 양반의 몸으로 아무디서나 술 안 먹고 여재는 멀리 허켄허멍 잘난추룩 이 계곡더레 들어왔당 기생 애랑이 몸 는 걸 보지 안해수과? 경허당 애랑이헌티 오꼿 넋 낭, 그 생난리를 피우는 이야기가 배비장전이우다.”
연극인 정민자의 낭독공연 중 일부다. 제주 토박이답게 제주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판소리나 마당놀이에서 ‘배비장’이란 말만 들어도 웃음과 해학이 묻어나는데, 그 무대가 방선문계곡이라는 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바람난장 단골 연주자 서란영이 팬플룻으로 ‘라노비아’와 ‘초연’을 연주한다. 시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아니 어떤 장르든 사랑을 바탕에 두지 않으면 명작이 될 수 없다 한다. ‘하늘이 다시 한 번 그대와 사랑할 그 시간을 허락해 준다면/놓치지 않게 나를 다시 놓치지 않게/다음 세상에서도 날 찾을 수 있도록’ ‘초연’의 한 구절이다. 특유의 부드럽고 청량한 팬플룻 음색이 불볕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준다.
오늘 바람난장의 진행을 맡은 김정희 시낭송가가 ‘신선을 부르는 장소’라는 김영수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환선대(喚仙臺)’를 낭송했다. 조선 정조 때 제주목사(1778년~1781년)로 부임한 김영수목사. 그 당시 양반들은 최고의 명승지인 방선문에서 시를 읊고 노래하다 흥이 나면 석공을 불러 바위에 이름과 시를 새겨 놓았다. 이 오언율시도 그 중의 하나다. 김목사는 재임 시절 운주당과 연무정을 중수하였으며, 산지천 간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마지막 순서로 황경수 제주대교수가 ‘떠나가는 배’, ‘이별노래’, 그리고 제주 출신 양금희 시인의 시에 난생 처음 곡을 붙였다며 ‘제주바다의 석양’을 불렀다. 황교수와 양금희 시인은 행정학과 사제지간이란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한 것이 아니고 취미로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그 곡에 얽힌 사연도 귀가 솔깃하다. 계곡에서 반주도 없이 부르는 노래. 그 흥에 겨워 절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쥘부채 하나로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며 신선놀음을 하던 방선문 계곡. 오늘 그 곳에서 시와 시낭송 그리고 음악과 그림이 만나 바람난장을 펼쳤다. ‘모든 예술은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글=문순자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
낭독ㆍ낭송=정민자
사회=김정희
음악1=황경수
음악2=이관홍
음악3=채미선 외(오카리나 6중주)
음악4=서란영(팬플룻)
음악감독=이상철
※다음주(23일자) 개제될 바람난장 공연은 지난 10일 제주현대미술관 야외 무대에서 펼쳐진 제주국제관악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