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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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어린 시절 새벽에 일을 나서는 부모님은 “복자 누나 잘 챙기며 놀고 있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복자 누나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집 누나였다. 담 너머 내가 ‘복자 누나야~’를 외치는 소리는 복자 누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따로 약속한 바 없지만 언제나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이는 동네꼬마들 역시 복자 누나를 챙기는 일을 다 제 몫으로 여겨 놀이 종목을 정할 때도 반드시 복자 누나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 해가 지면 복자 누나를 집에 데려다 주고 귀가하는 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 동네 꼬마들의 평범한 하루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복자 누나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동네 꼬마들이 그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동네꼬마들이 이른바 복자 누나를 위한 ‘주간보호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덕분에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복자 누나에 대한 기억이다. 사회복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록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네꼬마들이 복자 누나를 챙기던 그 삶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역공동체의 모습이라는 믿음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단단해 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거창한 복지정책이 등장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커뮤니티 케어’가 주요 복지정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지역사회의 힘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자신이 살던 곳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한다는 ‘커뮤니티 케어’는 9월에 종합계획이 발표되고 내년 선도 사업을 시작으로 전국 사업화될 모양새다. 보편화되고 있는 어르신 돌봄 문제와 돌봄서비스 확대 필요성에 대한 현실인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영역 속에서 돌봄을 받고 가족·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감으로써 지역사회 속에서 삶의 가치를 지속시키는 것이야말로 당사자의 인권과 삶의 질을 제고하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정책에 반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 가능한 내용만 보면 ‘커뮤니티 케어’ 정책의 근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인이라면 이미 체득되어 있는 ‘수눌음 문화’의 가치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픈 사람, 부모가 없는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제일 먼저 돕고 형편이 어려운 이에겐 모두가 가진 것을 조금씩 덜어 내고 수고는 함께 나누고 어려움은 같이 헤아리는 것이 수눌음 문화 아닌가. 이런 수눌음 문화가 이미 우리 제주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기에 ‘커뮤니티 케어’가 본격 추진되면 제주지역만큼 정책의 본질을 살리며 지역에 잘 정착시킬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사회복지예산 1조원 시대라지만 여전히 제주의 사회복지예산규모는 전국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기준선’을 요구하고 ‘제주형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거론한다. 제주만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수한 환경을 바탕으로 한 차별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요구이리라. 이참에 수눌음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제주형 커뮤니티 케어’를 선도적으로 추진해 보면 어떨까. ‘복자 누나’를 챙기던 이웃들과 동네꼬마들이 살았던 그 동네의 사람살이처럼 지금 우리 동네,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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