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방패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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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한라산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한반도로 북상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해 상대했지만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하는 수 없이 진로를 틀어야 했다. 그동안의 수차례 굴욕은 이젠 트라우마로 남았다. ‘루사’도, ‘나리’도 그랬다. 태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 내습 후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는 태풍 피해지역 지원반으로 제주를 찾은 국회의원들에게 “한라산이 태풍의 힘을 약화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줘 서남해안의 피해를 경감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한라산 방패론이다. 한라산이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강하게 접근하는 그 기세를 한풀 꺾이게 하면서 제주지역은 막대한 피해를 보는 대신에 호남 등 다른 지역의 피해를 줄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제주의 경우 태풍의 영향에 항상 노출된 만큼 정부에서 상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라산 방패론이 다시 등장했다. 제19호 태풍 ‘솔릭’의 대항마로 한반도에서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해발고도 1950m의 한라산이 나섰기 때문이다. 솔릭은 한반도 상륙 직전 강도가 약해지면서 당초 예상과 달리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전문가들은 솔릭이 약해진 것은 한라산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 덕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솔릭은 제주로 접근한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강풍 반경 360㎞의 강력한 ‘중형급’이었지만 그날 밤 제주를 거쳐 간 후에는 ‘소형’으로 급격히 약화했다. 제주 인근에 오래 머물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그전까지 강력했던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순간 최대 풍속 초속 62m의 강풍에 미동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1000㎜에 가까운 폭우를 마치 ‘원샷’하다시피 하면서 빨아들였다. 솔릭으로선 제주로 오는 동안 고온다습한 해상으로부터 흡수해 축적해둔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태풍이 높은 산에 부딪히면 강한 비를 쏟아내는 동시에 나무 같은 지형지물과의 마찰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고 한다.

▲다행히 솔릭이 약해지면서 전국적으로 피해는 적었다. 대신에 제주는 달랐다. 솔릭은 한라산을 정면돌파하지 못하자 제주에 오래 머물면서 대정 등 서부지역 농경지 등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제주도는 물론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한라산의 은혜가 컸다고만 하면 ‘입에 발린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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