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월계 진좌수’ 전설의 주인공…제주 최고 명의
(92)‘월계 진좌수’ 전설의 주인공…제주 최고 명의
  • 제주신보
  • 승인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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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향교 훈장 진정적 子…슬하에 3남
학문에도 능해 걸출한 인물로 소문 자자
무덤 비석은 월두형으로 현무암 재질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 마을 인근에 있는 진국태의 무덤. 주변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 마을 인근에 있는 진국태의 무덤. 주변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월계 진좌수

진국태(秦國泰, 1680~17450)의 자는 중서(仲舒), 호는 순암(順菴), 또는 월계(月溪)이다. 묘비에는 유향좌수(留鄕座首)라고만 쓰여 있어 벼슬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인생을 분방하게 살았던 것 같다.

진국태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지만 제주의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회자된다. 의술(醫術)에 진국태(秦國泰), 풍수지리에 고홍진(高弘進), 복서(卜筮)에 문영후(文榮後), 무예가 출중하고 풍채가 아름다운 양유성(梁有成) 등이 탐라 4절로 칭송되었다. 진국태의 의술과 관계된 설화들이 여럿 전해온다.

진국태는 보리공신(輔理功臣) 진욱(秦郁)11대손이다. 그는 고려 말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제주 입도조(入島祖) 진계백(秦季伯)10대손이다. 통정대부 선무랑(宣務郎) 판관 진언백(秦彦伯)4대 손이고, 제주향교 훈장을 지낸 진정적(秦廷積)의 둘째 아들이다.

풍기(豐基) 진씨의 우리나라 시조는 진필명인데 원래 중국 당나라 태원(太原)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당 고종 때 병부 시랑(兵部侍郞)으로서 소정방과 함께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백제 정벌에 참전해 백제를 멸망시킨 뒤 신라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입도조 진계백은 이 진필명의 18세 손이 된다. 진계백은 고려 말 우참찬(右參贊)까지 지냈으나 당시 권력자인 홍륜(洪倫최만생(崔萬生)의 미움을 사 미리 화가 미칠 것을 알고 공민왕 20(1371)에 가족과 노비를 이끌고 애월포(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로 피난 온 것이 진씨의 입도 경위다.

진국태의 부인 경주 김씨는 수군만호 김우달(金雨達)의 딸로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석범(碩範)이다.

진국태는 자태가 기이해 사람들이 우러렀으며 몸가짐마저 엄격하고 발랐다고 한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효도를 했고 재능이 빼어나고 특히 의술에 탁월했다.

그는 학문에도 능해 당대의 걸출한 인물로 소문이 났다. 진국태는 숙종 6(康熙 庚申年, 1680)에 태어나서 영조 21(乾隆 乙丑年, 1745)에 돌아갔다.

그의 무덤은 피문악(皮文岳) ()모르 남향이다. 경주 김씨의 무덤은 금오름(今岳) 지경 6소장 성최이(城最伊) ()좌에 있다. 진국태의 비석은 공자가 탄생한 지 2409년에 세웠는데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9(昭和十四)에 해당한다.

진국태의 부인은 경주김씨는 헌마공신 김만일(金萬鎰)의 셋째 아들인 초대 산마감목관 김대길(金大吉)의 증손녀이다. 그러니까 김씨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흥덕(興德) 현감(縣監)을지 김반(金磻)이고 아버지 김우달(金雨達)은 병마절도위(兵馬節制都尉) 수군만호(水軍萬戶)를 지냈다.

 

올레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왼쪽에 만들지만, 진국태 무덤의 올레는 여자와 같은 방향인 오른쪽에 있다.
올레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왼쪽에 만들지만, 진국태 무덤의 올레는 여자와 같은 방향인 오른쪽에 있다.

진국태의 전설

월계 진좌수의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좌수가 어릴 적 서당 가는 길에서 여인으로 변한 여우가 준 구슬을 교대로 입속에 무는 놀이를 한 일은 유명하다.

진좌수가 다니는 서당 훈장이 나날이 야위어가는 진좌수를 보고는 왜 그리 건강이 안 좋으냐고 묻자, 어린 진좌수 말인즉슨 매일 아침 서당에 오는 길에 어떤 여인과 구슬을 주면 교대로 입에 무는 놀이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훈장은 진좌수에게 다음부터는 그 구슬을 물지 말고 사람만 보고 구슬을 삼켜버리라고 시켰다. 이튿날 훈장의 말대로 진좌수는 그 여인의 구슬을 삼켰더니 구슬을 잃은 여인이 구슬을 달라고 발광하며 진좌수에게 달려들자 마침 지나는 사람이 그 여인을 잡았더니 사람이 아닌 여우였다. 그 후 진좌수의 몸이 나았고 커서는 세상에 의술로 유명했다.

, 한 사내가 허겁지겁 찾아와서 아내가 난산(難産)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진좌수는 아무 말 없이 창호지 한 조각에 불을 사르고는 그 재를 산부(産婦)에게 먹이도록 했다. 그러자 산부는 별 고통 없이 아이를 낳았다. 이 사실이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인들이 진좌수를 찾아왔는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어느 날 하루는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진좌수에게 처방을 원했다. 진좌수는 즉석에서 그 남자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느 시냇가 다리 밑에 해골이 있는데 거기에 괸 쌍용수를 마시면 낫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리 밑 해골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지렁이 두 마리가 빠져 있어서 남자는 차마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용하다는 의사의 말인지라 딱 눈을 감고 그 물을 마셨다. 그러자 갑자기 몸이 거뜬해지고, 병세가 씻은 듯이 나아졌다.

 

진국태 무덤

진국태의 무덤 주변에는 비닐하우스가 조성돼 있고 물탱크가 세워져 있다. 비석은 넓고 머리가 둥근 월두형(月頭形)인데 입자가 자잘한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높이는 83, 넓이는 위쪽이 47.5, 아래쪽이 45이며, 두께가 15.5이다. 상석이 있고, 바로 상석과 붙어서 한 줄로 된 향로석이 있다. 산담의 넓이는 120~130정도, 산담 앞쪽이 13.6m이다. 산담 측면 길이가 13.7m, 산담 후면이 10.7m.

산담 높이는 4면의 차이가 있어 대개 40~60가량 된다. 무덤의 봉분은 지름이 400, 높이가 130이다. 무덤 후면 좌측에 토신단이 있다.

진국태 무덤은 여느 산담과 달리 산담 오른쪽에 올레(神門이라고도 함)를 만들었다.

올레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만드는데 이 진국태 무덤은 오른쪽에 올레를 터 정돌을 하나 올려놓았다.

산담은 소위 뭇돌이라고 하는 주변 자연석 잡담들로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