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날을 준비하며
떠날 날을 준비하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안재철,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지난 방학 동안 아이의 일로 잠시 육지에 나가 지냈다.

학교에서 후배 교수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어찌 지내느냐?”, “덥지 않느냐?”는 일상의 소소한 안부를 물었지만, 아직은 뒷방늙은이가 아니고 할 일이 있다는 듯, 소식을 전해준 그미가 고맙다.

“그래요 이곳은 무척 더운데, 내가 더운 것은 괜찮지만, 아이가 더워하는 것은 안쓰럽고 마음이 아파요.”라는 답장을 적고 있었다.

나는 최근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자꾸 몇 년 남지 않은 퇴직을 생각하며, 가지고 있던 것을 정리하곤 한다.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으나 내가 떠나고 나면 없어져버릴 것들에 대한 애착이 일어난다.

한 서예가가 자기의 작품을 어느 스님에게 건넨다.

“작품을 써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스님께 “아닙니다. 제가 고맙죠. 죽으면 썩어 문드러져버릴 하찮은 재주를 사찰에서 거두어주시면 길이길이 남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그 스님께서도 당신께서 익힌 학문을 바탕으로 신도들에게 게송을 지어주시는 것이니, 그것을 받는 신도는 많은 사람의 복을 전해 받는 것이다.

마치 한 톨의 쌀도 농부와 수없이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먹을 수 있듯이….

두 분의 아름다운 대화가 지금까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에게도 재주는 있다. 혹 그것이 나 아니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가 넘쳐나서 주체할 수 없는 세상에 나까지 쓸데없는 정보를 흘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예를 들어 남들은 모두 지구가 평평하다고 하는데 나 홀로 둥근 것을 안다면, 그것은 반드시 후세에 알려야 한다. 혹 내가 살아 있는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인정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바른 것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사회에서 잘 놀다가는 나의 흔적이며 도리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애정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은 자기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심정에서 그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모가 그러하듯, 스승이 제자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자기의 업적이 제자를 통하여 후세에 남겨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아무튼 나는 아직도 그런 제자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밥값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간혹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잘 지낼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혹 저로 인하여 마음 상한 적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상투적인 글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물론 상투적인 말인 줄은 알지만, 말 그대로 믿고 말하자면, “그러니까 잘 좀하지, 닭벼슬만도 못한 벼슬도 벼슬이라고 쥐고 흔들어대더니, 떠나면서 용서해달라면 용서해 준답니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아니다. 들어서는 안 된다. 좋은 사람도 있지만, 입만 벌리면 거짓을 말하고, 호시탐탐 남의 것을 몰래 훔치고자 머리를 쓰는 사람도 한둘이 아닌데, 그들에게조차 좋은 소리를 듣는다면, 듣는 사람도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있다.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용서를 빌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는 날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불쌍하게 볼 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리고 혹 진실을 말하여 그들로부터 원망의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진실이라면 끝까지 진실을 말하여, 그들에게만은 욕먹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