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vs ‘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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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고(故) 이규태(1933~2006) 칼럼집 ‘이규태 코너’에 ‘친정 보자기’라는 말이 나온다. 며느리 친정 집안의 법도나 의식주, 육아 등 특유한 가풍을 의미한다. 이를 며느리가 시집올 때 패물이나 예단처럼 소중하게 여겨 보자기에 담고 온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이른바 문화 유입이다. 며느리를 통해 사돈댁의 자녀 교육 등 좋은 점이나 본받을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집안을 번성토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동질적인 것보다 이질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보자기가 큰 며느리라 하여 반겼다고 한다. 그래서 며느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후손의 발복을 위해선 씨도 중요하지만, 밭도 또한 중요하다는 이치다.

이질적 요소의 수용은 현대에 와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의 스콧 페이지 교수는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이론에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동질적인 그룹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낸다고 했다.

▲현모양처인 며느리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모르는 척, 봐도 못 본 척하면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그 전과정을 이수했다고 해도 기가 팍팍 사는 것은 아니다. 시댁 사람들 ‘호칭’ 때는 움츠러들었다. 누구에게든 나이에 상관없이 꼬박꼬박 ‘님’ 자를 붙여 존칭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요,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이다. 남편의 남동생이 미혼이면 도련님이다. 심지어는 남편의 여동생이 아무리 어려도 아가씨다.

하지만 친정 식구 쪽으로 가면 딴판이다. 자신의 남동생은 처남, 여동생은 처제, 언니는 처형이다. ‘님’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친정 보자기와는 사뭇 다른 대접이다.

굳이 조선 시대 며느리까지 언급할 필요 없다. ‘도련님’과 ‘서방님’은 오늘날 국립국어원에서도 예법에 맞는 표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말에 양성평등 관점에서 가족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보완해 발표했다. 도련님, 처남 등 성차별적 가족 호칭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마침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수많은 며느리가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며 시집 구성원에 대한 호칭 문제가 게시됐다.

친정 보자기에도 ‘자존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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