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시대 제주인의 삶과 역사 담겨
문헌상 ‘이여도’라는 명칭이 표기된 19세기 고문헌
“사료적 가치 높아 해설 담은 역주본 발간”
‘이른바 ‘너를 떠나보낸 섬’, 곧 이여도란 곳이 지금 어디인지는 상세히 할 수 없으나, 토박이 사람들이 그 소리를 거듭 전하게 되면서 그게 바로 풍속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대저 힘든 일을 벌이면서 공력을 쏟아 부을 때면 반드시 노래를 불러서 절조를 맞추곤 하는데, 이 ‘방애질’이란 일도 서로 번갈아가며 절구질 하며 곡식을 찧는 일이다.…’
‘이여도’와 ‘방애질소리’는 질곡의 역사가 함축적으로 내포된 제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몽골 오랑캐가 지배하던 시대, 목축할 땅을 바쳐야만 했던 제주인들은 바다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해 집을 나설 때면 제주인들은 ‘이여도’로 떠나보낸다는 전송의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이다.
‘이여도’라는 명칭을 문헌상에 최초로 표기했고, 제주인의 생활상을 기록한 이용호(1984~1905)의 시문집 ‘청용만고’를 현행복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이 역주해 출간했다.
현행복 원장은 제주의 역사를 담아낸 이 ‘청용만고’를 재해석해 알기 쉽게 풀어냄으로써 향토사 자료로 남기기 위해 1년 간 작업을 해왔다.
이용호는 을묘사변으로 제주에 유배와 4년 2개월간 제주에서 생활하며 체험한 것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풀어 ‘청용만고’를 엮었다. 그는 제주에 머물며 ‘귤회’라는 시모임을 만들어 동료 유배객들과 교류하고 개인 서당을 운영하며 김석익 등 제주의 젊은 인재들을 문하생으로 길러내기도 했다.
‘청용만고’는 제주 역사를 읊은 시문집으로 1887년 3월부터 1901년 5월까지 겪었던 일들과 상념 등이 담겨있다.
특히 책에서는 ‘이여도’가 ‘너를 떠나보낸 섬’이란 의미의 한자어 ‘이여도(離汝島)’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 책에 따르면 19세기 후반부터 제주인들이 연자방아(말이나 소의 힘을 빌린 방아)를 돌렸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전 제주인들은 맷돌작업을 통해 곡물을 빻았다.
현 원장은 “19세기 고문헌 속에 제주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등 이 자료의 사료적 가치가 높다”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역주본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