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네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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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탑동 수산물 시장에서 사 온 갈치의 내장을 훑어내고 토막을 냈다. 아내는 소금을 치더니 얼마 후, 짜면 안 된다며 물로 두세 번 씻는다.

소금은 언제부턴가 소리 없는 살인자로 식탁에서 멀어져 간다. 1960년대 고교 시절, 깨소금은 자취생인 나에게 귀한 반찬이었다.

허나 혈압 수치에 신경을 써야 할 나이가 되니 싱거운 음식을 꾸역꾸역 넘기고, 외식할 때는 못 볼 것을 본 듯 소금을 피하게 된다.

이른 아침, 페루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40떨어진 해발 3380m 산비탈에, 층층이 만들어진 살리네라스(Salineras, 소금마을)에 도착했다.

고산증을 느끼며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가다 바둑판 모양의 염전을 보니, 밤새 내린 눈처럼 살리’(소금)가 하얗게 쌓여 있다.

이 높은 산골짜기에 어떻게 소금밭이 형성되었을까. 오래전 안데스산맥은 바다 밑에 있었다.

그러다 융기가 일어나 지금 같은 고산지대가 되고, 토양 속에는 아직도 많은 염분이 남아있다.

우연히 이 지역을 지나던 잉카인들이 흐르는 물이 짠맛임을 알고 좁은 통로를 통해 계단식 밭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이 밭에 모아진 짠물이 안데스의 뜨거운 태양과 만나 하얀 결정체를 낳았다. 이 방식은 잉카시대 이전부터 오늘까지 이용되고 있다. 자연과 잉카인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보물이 아닌가.

살리네라스에는 3000여 개 소금밭이 있다. 소금밭 하나의 면적은 4~10쯤 되고 깊이는 10~30cm쯤 된다.

하나의 소금밭에서 한 달에 700정도 소금을 수확하는데, 이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황톳빛 두둑을 걷다 하얀 결정체 조각을 떼어 혀에 대니 단맛이 나며 짭짤하다. 오염되지 않는 안데스의 소금 맛이 아닌가. 문뜩 예수의 산상수훈이 떠올랐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나게 하겠느냐?”<누가복음 1434-35>

 

원래 소금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자궁 속의 양수에는 0.9% 염도가 포함돼 있다.

이보다 낮은 양수에서 자란 아이는 뇌와 뼈, 생식 기능이 약한 체질로 태어나게 된다. 혈액에 0.9의 염분이 있고, 링거 주사액에도 0.9가 들어 있다. 사람은 하루 2000mg 정도 염분을 섭취해야 생존할 수 있다.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생명소이다.

본초강목에도 소금을 활용한 75종의 처방을 소개하고 있다.

소금은 달고 짜며, 짠 것으로 독이 없다. 담과 위장의 열을 내리게 하고 체한 것을 토하게 한다.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식욕을 촉진한다.

살균 작용을 하고 피부병을 치료한다. 대소변을 통하게 하며 오미(五味)를 증진시킨다.

살리네라스에는 3종의 소금이 있다. 처음 수확하는 소금은 밝은 분홍빛이다. ‘소금꽃이라 불리는데 화장품이나 약용으로 쓰인다.

두 번째로 수확하는 눈처럼 흰 소금은 식용으로, 마지막으로 수확하는 흑색 빛 소금은 가축 사료 배합용으로 쓰인다.

신비로운 안데스의 살리를 생각하며 마을을 나서는데 입구 상점에 진열해 놓은 여러 모양의 자연소금이 시선을 붙잡는다.

아기자기한 소금 포대에는 용량과 함께 ‘100Natural Salt’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소금이라는 뜻이리라.

자연 소금에는 인간의 건강에 필수적인 원소가 들어있다.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마그네슘, 불소, 셀레늄 및 요오드와 같은 80가지 이상의 필수 미네랄과 미량원소를 갖고 있다. 이 중에 칼륨, 마그네슘, 칼슘은 혈압을 낮추는데 효과가 있다고 미국 심장 치료학회 등에서 밝혔다.

 

어쩌다 내가 살인자가 되었을까.’ 인간이 맛이 없다면서 정제염을 먹기 때문이 아닐까. 조물주가 주신 자연 소금은 선한 것이며, 짠맛은 소금의 존재 의미다.

짠맛으로 조화미(調和味)를 내고 썩음을 방지한다. ‘나는 살도 뼈도 다 삭이며 인간에게 전부 내어주고 있지 않는가.’ 안데스의 아침 햇빛에 소금꽃들이 진주처럼 반짝인다. 어디선가 살리를 거둬 드리는 잉카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소금은 신의 선물, 생명을 살리는 살리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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