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가슴에 아픔의 구멍 숭숭 뚫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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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송악산 진지동굴(上)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구축한 해군 특공대 기지
도민 굴착작업에 강제 동원…해안 절경 철저히 파괴
바람난장 가족들이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진지동굴에서 판을 벌였다. 송악산 진지동굴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제가 구축한 해군 특공기지다. 당시 많은 도민이 굴작착업에 동원됐다고 한다. 홍진숙 作 ‘비오는 날’.
바람난장 가족들이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진지동굴에서 판을 벌였다. 송악산 진지동굴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제가 구축한 해군 특공기지다. 당시 많은 도민이 굴작착업에 동원됐다고 한다. 홍진숙 作 ‘비오는 날’.

송악산-이창선

 

숭숭 구멍 뚫린 벌레 먹은 밤이 있지

단물 여태 남았는지 파도가 들락거리고

잠자리 가미가제도 날아드는 진지동굴

 

송아산 동굴에선 곡괭이 찍는 소리 난다

 

아버지 할아버지 바튼 기침 소리 난다

 

바다는 그 소리 듣다 도로 귀를 닫는다

 

누가 내 가슴을 이렇듯 파헤쳐 놓았나

낱낱이 그리움의 벌레들이 뚫어놓은

노을빛 송악산 가을, 펑 터진 분화구여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송악산 진지동굴 구축 배경과 현재 처한 상황까지 엄숙하게 낭독했다. 일제에 의해 송악산 해안 절경이 철저히 파괴돼 송악산은 오랜 기간 아픈 상처를 끌어 안고 서 있어야 했다.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송악산 진지동굴 구축 배경과 현재 처한 상황까지 엄숙하게 낭독했다. 일제에 의해 송악산 해안 절경이 철저히 파괴돼 송악산은 오랜 기간 아픈 상처를 끌어 안고 서 있어야 했다.

멀리 송악산이 보이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다. 사선을 그으며 차창에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이 송악산 앞바다 풍경을 흐리게 만들었다. 바람난장이 펼쳐지는 곳이 산이거나 바다거나 그 풍광만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풍덩 빠질 수 있으련만 오늘의 난장은 아픈 역사만큼이나 무겁고 숙연할 수 밖에 없다. 젖어 있어 더 까맣게 보이는 돌을 밟으며 송악산 아래 펼쳐진 해안에 삼삼오오 모여 든 시간은 오전 10시다. 바다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검은 모래 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포말은 오늘따라 더 희기만 하다. 궂은 날씨에도 관광객들은 저들만의 흥에 취해 웃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진지동굴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송악산 해안 진지동굴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제가 구축한 해군 특공 기지다. 당시 많은 제주도민들이 굴착 작업에 강제 동원되었다고 한다. 해안 절경의 아름다움은 그로 인해 철저히 파괴되어 송악산은 오랜 기간 아픈 상처를 끌어 안고 서 있어야 했다.

 

검은 우산, 빨간 우산, 줄무늬 우산들을 접어 검은 모래밭에 꽂아 놓고 우리는 난장을 위해 짧은 리허설을 진행했다. 연주자는 악기를 점검하고 사진 작가는 삼각대를 세워 거리 조정을 한다. 춤꾼은 옷매무새를 만지며 몸을 풀고 낭송팀은 원고를 들여다 본다.

 

문상필 국악인이 피리연주와 태평소로 바람난장 음악연주의 포문을 열었다.
문상필 국악인이 피리연주와 태평소로 바람난장 음악연주의 포문을 열었다.

드디어 진지동굴 앞에서 사회자의 맨트가 시작된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픈 상처를 함께 지닌 송악산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모두 보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을 이어가는 사회자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얼마 전에 사회자가 만났다는 지인은 진지동굴 구축 작업에 동원되었었는데 그의 유일한 희망은 진지동굴 구축 작업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 감자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파도 소리가 동굴을 돌아나오며 더 커지는 것일까. 가슴을 치고 귓전을 때린다.

난장의 첫 순서는 파도소리와 하모니를 이루기에 안성맞춤인 피리 연주다. 국악인 문상필 연주자는 진지동굴을 등지고 어디로 갈거나를 구슬프게 분다. 때를 맞춰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지고 악기를 태평소로 바꿔 두 번째 곡을 연주한다. 송악산을 한 없이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곡이다. ‘홀로 아리랑이다. 우리는 이렇게 가슴이 애린데 연주자는 어찌 저리 흔들림 없이 연주하는 것일까.

 

이창선 시인은 자작시 ‘송악산’을 낭독했다. 그가 읊는 시 한 구절마다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이창선 시인은 자작시 ‘송악산’을 낭독했다. 그가 읊는 시 한 구절마다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이창선 시인은 그의 시, ‘송악산에서 누가 내 가슴을 이렇게 파헤쳐 놓았나라고 한탄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직접 낭송하며 송악산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깊이 새기게 해 주었다. 이어서 김정희와 시놀이팀의 낭독이 이어진다. 송악산 진지동굴의 구축 배경과 현재의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들려 주는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한숨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들이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가슴에 동백꽃을 단 네 명의 낭송가는 머리와 어깨를 적시는 빗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숙연한 자세로 진지동굴과 관련된 내용을 낭독한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송악산 해안 절벽에는 15개의 인공 동굴이 뚫려 있는데, 너비 3-4m, 길이 20m에 이른다. 송악산 일대는 응회암이라는 연약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현재 이 일대는 대표적인 다크 투어유적인데다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해서 지질공원의 대표 명소로 포함되는 곳이다.‘

 

돌 하나, 바람 한 점, 풀 한포기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제주도! 그러나 곳곳에 박힌 아픈 상처들! 오늘은 미약하나마 우리의 마음이 담긴 연주와 노래와 낭송이 회복으로 가는 오솔길이 되기를!

-하편에 계속됩니다.

 

=손희정

그림=홍진숙

사진·영상=허영숙

=박연술

낭송=김정희와 시놀이(이정아, 이혜정, 장순자)

사회=정민자

음악1=서란영

음악2=문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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