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칼리스트
로마의 칼리스트
  • 제주신보
  • 승인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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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로마는 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초기의 로마 교회가 기독교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그 지리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그와 다른 신학적인 주장들이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논쟁과 반론의 여지가 있었다. 논쟁과 반론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그 주장들을 강력하게 펼쳐나갈 현실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 교회의 감독을 선출할 시기에 히폴리투스와 칼리스트라는 두 인물이 추대되었다. 한 사람은 훌륭한 성품의 학자였고 다른 사람은 아주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칼리스트는 로마 고위 관리의 노예였다. 공적인 일로 바쁜 주인은 칼리스트에게 전 재산을 맡기다시피 했다. 칼리스트는 주인 몰래 주인의 돈으로 금융업을 하다가 파산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멀리 도망가기 직전에 그는 붙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칼리스트는 곧 풀려나게 된다. 사업을 하다가 되돌려 받지 못한 큰 돈이 있다고 주인을 설득해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유대인에게 받을 돈이 있었는지 그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난동을 피워서라도 돈을 받아내려 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의 예배를 방해했다는 죄로 고발당했고 법정에 끌려가 재판을 받은 후에 어느 광산으로 유배되고 말았다. 그런데 유배된 광산에는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를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순교자들이 석방될 때 칼리스트도 함께 석방되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순교자들과 함께 석방되긴 했지만 로마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연로한 감독들이 세상을 떠나고 정치적 상황이 오락가락하는 동안에 칼리스트는 큰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히폴리투스와의 경쟁에 이겨서 로마의 감독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칼리스트에 대하여 기록된 글이 남아 있고 로마 교회는 모든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인물을 교회의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 결정에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타당성도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의 로마 교회는 ‘세상 속의 교회’가 되려고 했다. “세상을 얻으려는 자는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를 선택했던 셈이다. 체험적인 현실적인 해결사로서 칼리스트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현실은 현실적인 사람들이 이끌어 간다. 현실이 비윤리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사회 전반의 관심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 발을 딛고 길을 열어가려는 공동의 관심이 필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가 놀랍게 발달하고 그리고 융합해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들을 열어간다. 그러니까 어떤 전문가도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도 만만치 않을 현실이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듯하다. 오래된 갈등과 대결을 자제하면서, 눈앞에 다가온 새로운 현실을 헤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관심을 모으자는 제안을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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