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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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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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지인이 개업하는 가게에 축하인사차 다녀오는 길이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택시를 세우거나, 들고 있던 무언가로 얼굴을 가리며 허둥지둥 뛰어갔다.

차창은 와이퍼의 움직임에 따라 맑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2초, 그 맑아진 시야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오십여 미터 전방 가로수 밑에서 손우산을 하고 섰다가 택시를 잡으려고 큰길로 내려서며 손을 흔들었다. 택시는 쌩하니 지나쳤고 튕겨진 물을 피하려던 그는 중심을 잃고 심하게 휘적거렸다. 다리가 성치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은 뒤 그 남자 앞에 차를 세웠다.

“신세지겠습니다. 택시 잡기가 쉽지 않네요.”

내 손짓에 남자는 망설임없이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덥고 축축한 기운이 남자와 함께 차안으로 후끈 밀려들었다. 뒤로 탔으면 싶었으나 생각일 뿐 그에겐 어떤 내색도 하지 못했다. 흠뻑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그의 어깨를 적셨다. 수건을 내밀자 남자는 선선히 받아 물기를 닦았다. 쉰쯤 되었을까. 입성은 초라하고 얼굴도 초췌했지만 선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세요?”

그제서야 남자는 지갑을 뒤적이더니 명함을 한 장 꺼내 보였다.

“여기로 가야하는데, 근처 법원까지만 태워 주시면….”

가정법률상담소였다. 명함 뒷면에 약도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그리 좋은 일로 가는 건 아니겠구나 싶어서 나는 고개만 끄덕여 주었는데, 오히려 남자가 그곳으로 가는 이유를 털어 놓았다. 아내가 몇 달 전 아무런 얘기도 없이 집을 나가 소식도 없고, 석 달 째 카드명세서만 날아오는 중이라 했다.

“보다시피 내가 성치않은 몸이잖소.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데 기백만 원씩 날아오는 돈을 어찌 갚겠소. 하나 있는 딸도 얼마 전 엄마를 찾는다며 나가 돌아오지 않고.”

금액이 점점 커가니 겁이 났다고 했다. 누군가 상담소를 추천해주었고 혼자 속을 끓이느니 상담이나 해보려고 나선 길이었다. 그는 아내와 좋은 추억이 많다며 지금이라도 돌아온다면 아무 이유도 묻지 않을 거라 했다. 그에겐 아직 아내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헤어질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예보없이 비는 내려서….”

한참 만에 남자가 민망했는지 말을 바꾸었다. 변변찮은 비닐우산조차 준비하지 못한 채 만난 소나기에 그는 난감해 하고 있었다. 더구나 불편한 몸으로 빗길을 걷는 건 쉽지 않을 터였다.

평범하게 사는 우리도 깜냥 것 준비하며 산다 하지만, 느닷없이 닥치는 일들을 상대하기는 그리 쉽던가. 하물며 준비없이 닥치는 불행엔 또 얼마나 황망스러운가. 적어도 내게 오는 크고 작은 불행들은 크기도 시간도 예약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미련한 내가 그 조짐을 예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해에 나는 예고 없던 비바람을 만나 옴팡 젖은 채 허둥거려야 했다. 그때 누군가의 처마 밑이라도 기어들어 잠시나마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상담소 앞에 도착했을 때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내리면서 태워줘서 고맙고 형편없는놈 넋두리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이 남자가 혼자 넘겨야 할 우기가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그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말을 해야할 것 같은데 주제넘게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득 개업 답례품으로 받은 우산이 생각났다. 혹여 돌아갈 때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비가 그칠 거라며 손을 내저었만 “행운을 비는 의미입니다”는 내 말에 웃으면서 우산을 받았다. 임시응변으로 나온 말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행운이 찾아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마음은 이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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