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사흘 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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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큰아들이 호텔 안내양에게 스시 잘하는 맛집을 묻는다. 영어로 한참 주고받는 눈치다. 소통이 원활하다. 여러 해 외국 회사에 근무했던 이력이 빛을 보는가. 아들이 외국인과 입을 트는 건 처음 본다. 표정이 시종 밝아 발치에서 바라보며 마음이 편하다. 아빠를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손녀도 그걸 보며 눈을 반짝인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불통으로 곤혹을 치를 것이다.

어둠이 내린 거리로 나섰다. 도심이라 빌딩이 숲을 이뤄 골이 깊다. 간사이 지역에 위치한 대판부는 전체 인구 880만 명, 오사카시만도 270만 명으로 도쿄 뒤를 잇는 일본 제2 도시다. 특히 경제 분야에선 도쿄와 양 강 체제를 이뤄 온 대도시다.

한데도 어두워서일까. 내가 지금 일본 굴지의 도시 오사카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밤거리가 몹시 어둡다. 특히 교통이 번잡한 대로변은 사람들이 어떻게 길을 걸을까 싶을 정도로 침침하다. 가로등도 초저녁잠에 졸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건널목을 건너거나 가로수 아래를 지나 잰걸음을 내딛고 있는 시민들이 용하단 생각이 든다. 무더운 저녁에 힘들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읍내도 이렇게 어둡지는 않다.

순간, 섬뜩한 상상을 한다. 일본인들 절약정신 말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아껴 쓴다 해도 저들을 따르지 못하겠다. 야간 통행은 전깃불만 밝히는 게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밤길에 짙게 내린 어둠을 몰아내고 있지 않은가. 발에 차일 것 없는 인도블록이 깔린 평탄한 도시의 길이다. 그들은 아슬아슬한 것 같아도, 빠른 걸음으로 귀갓길을 재촉하고 있다.

아들이 행인에게 ‘스시 집’ 위치를 묻는다. 가리키는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 다시 묻는다. 길 가던 젊은 여인이 활짝 웃는 낯으로 손가락을 저어 가며 가리켜 준다. 막상 찾으려니 눈에 들어오지 않아 헤맨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골목 깊숙이 들어서던 참이다. 어깨를 스치며 오가는 사람 틈을 비집고 한 여인이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조금 전 길을 안내했던 그 얼굴이다. 자기가 길을 잘못 말했단다. 아들과 빠르게 다시 소통이 이뤄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세히 설명을 마치고 돌아서는 여인. 지켜보던 나도 무조건 땡큐를 연발했다. 한 번 스쳤던 외국인이다. 그냥 지나쳐 버려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 일본 여인은 그러지 않았다. 어린 손녀딸도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돌아서는 여인의 뒤를 향해 감탄하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의 일본이 그냥 된 게 아니란 사실, 그 힘의 원천, 그들의 진면목을 본 것 같았다. 초저녁 바쁜 시간이다. 우리였다면 가던 길 돌아서서, 더욱이 처음 만난 외국인을 애써 찾아가며 허겁지겁 달려왔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퍼뜩 일본이 무서운 나라로 다가왔다.

말로만 듣는 스시 치하루(SUSHI CHIHARU)를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 유명한 그곳서 스시 오징어나 벤자리, 전갱이, 참치로 입을 호사시키려 한 게 아니다. 돈도 없다. 호텔에서 말한 곳을 찾으려던 것뿐이다.

스시 집은 붐볐고 풍성했다. 생선덮밥에 장어구이덮밥, 참치를 조금씩 곁들이다, 생맥주로 마무리했다. 비싸다. 하지만 엔화를 원화로 셈하면 돈을 쓰지 못한다. 길을 안내해 준 여인이 지갑을 열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스시는 한 번에 그치기로 단단히 작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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