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등진 피난 행렬…‘6·25 상처’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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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미술 걸작전⑨

▲이수억-전쟁의 비극 표현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1세대 서양화가다. 종군화가로도 알려질 만큼 6·25 이후 폐허가 된 모습을 소재로 삼았다.

작품들은 예술성과 한국전쟁사의 주요 도판으로도 대표할 만하다.

이번 전시작은 1954년에 제작한 작품 ‘6·25 동란은 피난민 행렬의 비극적 상황를 표현한 이수억의 초기 대표작이다.

피난민들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전후 한국회화, 특히 화유엽, 장리석, 윤중식 등 월남 미술가들의 회화에 폭넓게 나타나지만 이 역사적 비극을 귀로망향등의 제목을 붙여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여타의 화가들과는 달리 이수억의 이 작품은 명시적으로 현실을 직시해 대작으로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각별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민족적 수난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특히 이수억은 전쟁의 상처를 그린 이후 한국의 산야, 가족, , 농촌풍물, 생활공간, 전통문화와 국보보물, 역사 흔적들을 유화물감으로 그리며 한국적 리얼리즘을 구축하려 했다.

 

▲이봉상-시대 따라 화풍 변화

비교적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화풍에도 시기에 따른 변화를 보인 화가다.

초기에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인상파적 작품을, 1950년대 이후에는 야수파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붓질과 색채로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1952년 이중섭 등과 함께 피난지인 부산에서 기조전을 열었다.

서양화 구상 계열에서 대한민국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미술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젊은 화가들을 위해 설치한 작업실 앙가주망에서는 이만익, 윤명로 등의 화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전시작은 역광으로 인물의 상반신을 누드로 처리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시기 제작된 것으로 작가는 이 시기에 이화여자대학교 미술학과 강사로 재직하며 작품의 주제나 기법에 있어 초기의 인상과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인물과 사물에 입체감을 배제하고 평면적으로 처리하며 강렬하고 밝은 색채를 사용했다. 수직, 수평이 강조된 구도는 보다 더 강조된 장식적 성향을 보여준다.

 

▲함대정-형태 해체 반추상화

입체주의적 방법으로 자연형태를 해체한 반추상적인 작품을 그렸던 화가다.

전시작 악사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의 모습을 선과 면으로 조각조각 분해하듯 나눠 표현한 반추상회화다.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악사와 악기의 형태감을 매우 압축적으로 포착하고 활달한 검은 필선과 색면으로 대상을 구축하거나 해체하면서 공간을 설정해나간 의도가 두드러진다.

이처럼 대상의 특징과 단절되지 않은 추상을 시도하는 예는 한국추상회화의 특성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악사의 경우는 겹쳐 그려진 날카로운 대각선과 사선 등의 속도감 있는 전개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의 빠른 손놀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등 강렬하고 파괴적인 표현 감각을 발휘한 점에서 1950년대의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첨단적인 조형의식을 보여준 예다.

1957년 파리에 건너가 서민가인 콩트레스크라프 광장의 허름한 호텔의 다락방에서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한 화가였다.

악사도 이때 그려진 것으로 당시 느꼈을 작가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향을 떠나 가난과 빈곤을 겪으며 창작에 몰두해야 했던 작가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연민을 어둡고 무거운 색상과 암울한 분위기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구본웅-분석적 입체주의

계몽적 활동을 했고 화풍은 입체주의 영향으로 지적, 분석적 경향을 보였다.

전시작은 4점으로 이 가운데 중앙청이 보이는 풍경1934년부터 1936년까지 소공동에 문을 열었던 우고당이라는 골동품상을 경영하며 늘 보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화면 앞쪽에 여러 가지 색의 건물 지붕들이 보이고 그 안쪽에 하얀 중앙청 건물이 북악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풍경이다.

중앙청이란 중심 소재를 그림 중앙에 배치한 평범한 구도지만, 건물과 지붕이 굵은 선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돼 전반적인 분위기에 반전을 주고 있다. 또 멀리 있는 산과 가까이 있는 산을 색으로 변화를 줘 거리감을 조성하고 중간중간에 붉은 색을 칠해 변화를 준 색감에서도 남다른 감각이 보인다.

 

▲피카소, 큐비즘 영향

한묵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묵의 전시작은 모자상으로 1950년대 피카소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둥근 얼굴에 L자형 코의 기하학적 얼굴과 동그란 가슴을 강조한 둔중한 형태의 육체, 마지막으로 우울한 듯 어두운 청색이 여러 모로 피카소의 여성 누드를 연상시킨다.

그가 1957년에 그린 가족은 이 작품보다 기하학적 평면추상에 훨씬 가까운 양식을 보여준다.

1950년 후반에 국전의 고답적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작가들은 이처럼 피카소와 큐비즘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반구상이면서 반추상의 양식에 물감의 질감을 강조한 다소 어두운 색채의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모자상은 작가가 선호했던 주제였다. 모자상은 기독교적인 도상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부산에 전쟁을 피난했던 시절에 그린 또 다른 모자상(1954)에는 다리 없는 어머니와 아이의 비극적 모습을 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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