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한끼 밥 뜸들이는 시간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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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하논분화구(上)
5만년 전 수성화산 폭발로 생긴 호수에 물을 빼 논 형성
주민들, 500년 전부터 논농사‧‧‧하구호 복원 사업 추진
하논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높고 청명한 하늘 밑에 벼가 익어가고 있다. 500년 전 선인들이 노르스름하게 익는 벼를 바라보던 시간과 바람난장 가족들이 하논에서 보내는 시간이 서로 겹쳐진다.
하논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높고 청명한 하늘 밑에 벼가 익어가고 있다. 500년 전 선인들이 노르스름하게 익는 벼를 바라보던 시간과 바람난장 가족들이 하논에서 보내는 시간이 서로 겹쳐진다.

하논*

- 김윤숙

부름에 대답하듯 발걸음을 놓는다

아득한 새 지평의 또 다른 섬에 닿아

가만히 귀 기울이니 풀벌레 소리 가득차다

 

뉘엿한 가을들녘 그림 속에 빨려들어

오만 년 전 물길이 간곡하게 이르는

세상의 근본을 열어, 한 끼 밥 뜸 들인다

*오름 분화구안의 논, 습지와 샘이 있다.

 

파란 하늘 사이로 뭉게구름의 연기가 장관이다. 분화구여서일까, 난장 무대인 하논 분화구 안은 후텁지근하다. 4·3에 잃어버린 마을인 옛 하논 성당 터에서 15회 난장을 펼친다. 이곳의 대나무군락, 거목이 된 은행나무 등과 경계석의 중간 중간에 놓이거나 끼인 큼지막한 돌과 붉은 화산탄들이 눈길 끈다. 한때의 뜨거움을 대변하느라 의연한 듯, 잃어버린 마을을 추억하며 서있다.

시낭송가 김정희의 사회로 참가자들이 소개되며 난장의 문을 연다.

하논방문자센터의 오충윤 하논지킴이가 바람난장 가족에게 하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논방문자센터의 오충윤 하논지킴이가 바람난장 가족에게 하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논방문자센터 오충윤 하논지킴이의 설명을 경청한다. 둥그런 하논의 전체 면적은 38만평, 둘레가 약 4, 길이 1100m, 높이 143~50m, 바닥 면적 65000평이 된다. 제주의 유일한 논습지에 22000평 논농사가 한창이다. 5만 년 전 수성화산의 폭발로 마그마가 올라오다 차가운 지하수층과 만나 식어지며, 평지보다 낮게 형성되자 용천수가 고여 생긴 호수에 물을 빼 논이 된 것이다. 이곳 퇴적층은 천년에 30정도 생기는데 현 퇴적층은 15~8정도로 동남아의 기후나 고식물, 고생대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된다. 대지는 큰 연못, 대답은 큰 논을 말하며 연못이 논으로 바뀐 경우로 이 상태로는 퇴적층 보호가 어렵다.

1900년 이전 기록에 의하면 하논 성당은 19006월에 생겨, 많은 주민과 함께하다 신숙주와 이재수의 난으로 면형의 집으로 옮겨진다. 4·3 시 주민이 죽고, 토벌군경에 의해 16100여명 주민들이 소개되어 잃어버린 마을이다.

최근에 하논이 각광받는 점은 한반도 최대의 분화구이자 마르(호수)형 분화구여서다. 퇴적층 또한 생태계의 타임캡슐이자 유일한 논 습지라 더 보존돼야 한다.

하논 성당과 봉림사도 4·3 시의 소개 후 이전과 재건되며 자연생태와 역사,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천주교 순례길과 불교 선정의 길, 올레길로써 상생한다.

2012WCC가 하논 복원을 권고 ‘500년 전의 화구호로 돌아가자취지에 수심 6m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희 시낭송가가 김윤숙 시조시인의 ‘하논’을 낭송하며 더욱 깊이 있는 자리가 됐다.
김정희 시낭송가가 김윤숙 시조시인의 ‘하논’을 낭송하며 더욱 깊이 있는 자리가 됐다.

김윤숙 시조시인의 하논을 시낭송가 김정희의 낭송으로 더욱 웅숭깊어진다.

. 뉘엿한 가을들녘 그림 속에 빨려들어/오만 년 전 물길이 간곡하게 이르는/세상의 근본을 열어, 한 끼 밥 뜸 들인다대목에 고개 끄덕여진다. 누군가의 한 끼 밥을 마련해주는 노고, 언젠가는 이 시어들도 역사 속의 화두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웃자란다. 근처에서 익어가는 누런 하논 들판이 목을 빼며 난장을 경청하는지도 모르겠다. 짐짓 자신들의 처세가 분분하기에 더 예민해지는 까닭이다.

성민우씨가 돌 위에 올라서서 색소폰으로 Kenny G의 ‘Loving You’를 연주했다.
성민우씨가 돌 위에 올라서서 색소폰으로 Kenny G의 ‘Loving You’를 연주했다.

성민우의 Kenny G‘Loving You’를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로 감상하며 이끼 낀 마음들을 씻어낸다. 큰 돌 위에 올라서서 연주하니 특별한 무대 같다. 나무 꼭대기의 새들도 한층 더 높은 톤으로 끼어든다.

공연 중 무더위에 그늘 드리운 은행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다, 처음 마주한 논에서 익어가는 벼를 보며 탄성이 이어진다. 벼들도 노르스름하게 익는 만큼 고개 숙여 자신을 더욱 낮추고 있다. 500년 전부터 이어온 논농사다. 복원, 제대로 될 것인가에 의문부호를 보내는 이도 있다.

하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고해자

그림=유창훈

낭독공연=정민자

영상·사진=채명섭

사회·시낭송=김정희

·소리=박연술·은숙

연주=서란영·성민우

음악감독=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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