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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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랑, 수필가

우연히 오래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글의 내용은 이랬다. 40여 년 전 어려운 살림에 구입한 가구가 있는데 바로 서가다. 문학, 과학, 역사, 철학, 교육서적 등 세상에 이치를 품어 안은 서가는 집 안의 품위를 지켜주었다. 또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그 서가를 버린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질 수 있는 용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삶을 지탱했던 욕망의 가지들을 솎아냄으로 영혼의 자유로움을 소망한다.

엊그제 나도 선생님과 똑같은 일을 치렀다.

40여 년 전 일이다. 첫 월급을 받고 맞춤 가구공장으로 향했다. 수십 번 그렸다 지웠다 반복한 설계도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은 생각보다 비싼 가격을 제시했지만 흔쾌히 흥정했다. 책의 크기에 따라 꽂을 공간을 달리하고 소품을 넣을 서랍도 주문했다. 두 개의 쌍둥이 서가를 나란히 방으로 들이던 날, 그 행복했던 황홀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쪽 구석에 쌓아 놓은 책들을 서가로 옮기고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월부로 구입한 전집이며 교육 관련 전문서적들과 문학서적들로 채워졌다. 세상을 비판하는 책들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색안경을 쓰고 세상과 불화했다. 균형과 분별이 턱없이 모자랐던 젊음의 시기다. 벽에 가만히 기대어 앉아 서가에 꽂아 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배부른 시절이었다.

내 은근한 자랑에 친구들이 맞춤 서가를 구경하러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제일 먼저 녀석을 챙겼다. 그동안 네 번의 이사를 다니느라 모서리에 흠집 나고 색이 바랬지만 오래된 중후함이 외려 품위가 있어 보인다. 다른 소품은 버릴지라도 내 첫 월급으로 구입한 서가임을 강조하며 자녀에게 대물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들을 꺼내어 분류하고 묶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책들이 폴폴 먼지를 날린다. 청년 시절 끼고 살았던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를 꺼내자 누렇게 변색된 책장이며 작은 글씨가 다시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버릴 곳으로 분류했다. 김동길 선생의 ‘한국 청년에게 고함’ 이며 현기영 선생의 초판 ‘순이 삼촌’을 꺼냈더니 그도 매한가지다. 교육학서적을 한 권씩 꺼내 펼쳐 봤지만 낡은 이론에 불과하다. 결국 수 백 권을 나일론 끈으로 십자형 포장을 하고 폐휴지로 넘긴다.

서랍을 열었다. 편지 봉투를 보자 웃음이 난다. 남편과 그리 길지 않은 1년여 동안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주고받은 연애편지 몇 장이 보물처럼 숨어 있지 않은가.

30년 넘은 세월에 글씨는 불변이나 내용을 훑어보니 낯간지럽다.

그땐 영혼을 담아 쓴 사랑 고백이었는데….

아파트 마당에 대형 폐기물 차가 도착했다. ‘대형폐기물 신고필증’을 붙이고 며칠간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건장한 남자 셋이서 서가를 들고 차 위로 던진다. 40여 년 전 내방으로 들일 때완 사뭇 다른 대우다. 차 위로 냅다 던져지는 서가를 베란다에서 바라보았다. 그동안의 정리 탓일까. 마음이 씁쓸하다.

삶의 마지막은 결국 소유하고 있었던 것과의 결별이다. 조금 먼저 보냈을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소유한 것에 대한 솎아내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인제 옷장으로 눈을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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