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이 지켜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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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얼마 전 평일 오후에 시간이 있어 혼자 골프를 치러갔다. 혼자 치다 중간쯤에서 한국에서 온 분과 합류하게 됐다. 초면이었지만 같이 라운드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러나 단순히 구경만 하러 온 건 아니고 한국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현지조사차 온 것이라고 했다.

자녀 교육도 이미 끝났을 거 같은 지긋한 나이에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그는 한국은 원칙과 룰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시위와 온라인 댓글이 법보다 앞서는 사회라고 했다. 사회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위아래가 없어진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위장전입,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등 5개 항목에서 한두 개 걸린 사람은 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당당하다고 했다.

남이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성토하다가 자기가 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내로남불, 이중 잣대는 이제 고질병 수준이라고 했다.

환부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지도층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룰과 원칙을 강요할 수 없는 사회가 돼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느 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위장 전입한 사실을 시인하며 국민이 평가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자신이나 임명권자가 내려야할 결단을 슬쩍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뉴질랜드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최근 뉴질랜드의 30대 여성 총리는 공직자 인선 문제와 관련해 민간인과의 회동 사실을 숨겼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방송장관을 해임했다.

또 부하 직원과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관세장관도 하루아침에 옷을 벗게 만들었다. 고위 공직자가 갖추어야할 도덕성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장관이 여행경비 몇 백만 원을 부당하게 사용했다가 십여 년의 정치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의 뒤안길로 총총히 사라지기도 했다.

이런 일은 뉴질랜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직사회의 잣대가 그만큼 엄격한 것이다. 국민들의 눈높이 이상이다. 지도자들이 궂은일과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뉴질랜드 공직사회가 높은 도덕성과 청렴도를 유지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 온 분과 골프를 치고 나서 며칠 뒤 어떤 모임에 갔다. 교민 중 한 사람이 식사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조국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도 조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한다고 했다. 뿌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마음도 같다는 뜻일 게다.

그 순간 필자는 문득 골프를 함께 쳤던 분도 한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게 된다면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룰과 원칙이 지켜지는 한국 사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국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돼야 한다는 염원은 외국에 나오는 순간 더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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