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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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올 여름은 하늘과 땅이 제 감각을 잃은 듯 사람 체온보다 높은 기록을 남겼다. 하늘도 펄펄 끓는 듯 보인다고 하는 폭염을 염천(炎天)이라고 한다.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양하지만, 으뜸으로 물이 아니던가?

생명의 근원은 물이다.

콸 콸 콸 ! 거침없이 용솟음치며 흘러내리는 소리. 생명의 소리다. 그 용천수(샘물)는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트럭에 몸을 실어 2박 3일 동안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수학여행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비포장도로라서 큰 비만 내렸다면 신작로는 울퉁불퉁 굴곡이 이어지고 페인 곳이 많아 달리는 트럭에 몸을 맡긴 엉덩이는 제멋대로 춤을 춘다. 한두 시간 타고 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고단한 몸과 마음도 이름난 샘물을 만나면 피로는 쉽게 녹는다. 용천수는 바로 피로회복제였다.

금산물, 유수암천, 하물, 엉물, 장수물, 엉물, 논짓물, 곽지과물, 지장샘물…. 도내 대표적인 샘물들이다.

용천수는‘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용천수는 용출하는 지역에 따라 해안지역 용천수, 중산간 용천수, 산간지역 용천수로 구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직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해발 200미터 이하에 분포하는 해안지역 용천수다. 이것이 제주도내 마을이 해안지역을 따라 환상(環狀)의 형태로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되었다.

용천수!

어머니는 첫 닭이 울면 일어나서 신작로를 건너 해안가 샘물터로 물 길러 나섰다. 몇 차례의 물을 허벅으로 길어 물 항아리를 가득히 채우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제서야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입을 쩍 벌리며 기지개를 켠다. 어디 그뿐인가. 식구들의 빨랫감을 모았다가 질구덕에 담아 등에 지고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면서 동네 아낙네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동정과 정보의 한마당이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아낙네의 손빨래. 흐르는 물과 함께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놀라기도 하며, 샘터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한다.

밀물이 밀려올 땐 조개를 캐던 아이들의 첨벙첨벙 소리는 야단법석이다.

세월이 수십 년 흘렀다. 소싯적 추억은 고스란한데 보고 싶은 어머니와 물허벅, 물 항아리는 어디에도 없다. 초가가 없고, 초가가 없으니 부엌이 없고 부엌이 없으니 물 항아리가 있겠는가?

생명의 젖줄,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해 발간한 용천수 관리계획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용천수는 1,025 곳 중 364 곳이 매립되거나 멸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립과 멸실의 주범은 각종 개발과 도로확장이었다. 또한 상수도가 보급되고 난 후 관심부족으로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강한 결속력을 다져온 용천수가 사라져간 것이다. 살아 샘솟는 ‘산물’마을의 역사를 다지며 제주인과 수천 년을 동고동락해왔다.

용천수를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한 수자원으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이용가치와 보전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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