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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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이 “옛날하고 똑같다. 넌 어쩜 늙지도 않니”라며 수다를 떤다. 건강과 자녀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이제 많이 늙었네?”라며 나이 듦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얼굴에 패인 주름과 늘어나는 흰머리에 거울 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 결혼 시켜야 할 자녀가 있고, 자신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경제력이 마련되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다. 흐릿한 시력과 느려진 걸음걸이에 스스로 답답하고 주변에 불편을 줄까봐 외출 횟수가 점차 줄어든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의 기능이 약해져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오래가지 않는 기억력과 일상생활의 패턴을 잊어버리는 행동에 자존감을 잃게 된다.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아프지 말고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란다.

친정엄마도 말하곤 했다. “건강하게 살다가 저녁밥 잘 먹고 잠든 뒤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는 일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생활하신다. 병원 규칙상 월 1회 하루만 외박이 가능해서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모신다. 지난달은 추석날 아버지 제사에 맞춰 모셨다. 23명의 자손이 제사상 차리는 것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며,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자책하셨다.

우리의 부모님, 다수의 노인들은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의 감격도 잠시 또 전쟁을 겪었다.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그분들은 힘들고 어렵지만 가족이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것에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 가족은 힘든 삶을 견디는 원동력이었다. 그랬던 분들이 생활형편이 나아져 살만하니 나이가 들고 병을 얻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외로워한다.

자책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모두 잘 살아 이렇게 모일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을 하신 것이다. 감사하다”라고 하니 “그런가”하며 씨익 웃으시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찡했다. 자신이 힘들고 어렵게 살면서 이룬 성취가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만족감을 갖는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살아온 세월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노인들은 늙음이 서럽지 않다.

삶과 죽음은 늘 함께한다. 늙는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구나 겪는 현상이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살아 온 삶에 가치를 느끼고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노년기의 늙음으로 인한 외로움과 죽음이 주는 두려움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어른들이 행동이 느리다고. 급속히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옛날 말만 하니 대화가 안 된다고, 노인을 폄훼하는 말로 상처를 주기 전에 노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나온 삶을 존중해줄 때 대화가 시작된다. 노인들이 현재에서 과거를 통합하여 삶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후세대인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늙어가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진리 앞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천상병 시인의 시구와 같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소풍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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