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의 삶’을 위하여
진정한 ‘나의 삶’을 위하여
  • 제주신보
  • 승인 201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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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음식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고, 옷은 입어봐야 나에게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남들이 좋다는 음식도 나에겐 거북한 맛일 수 있고, 남에게 잘 어울리는 옷도 나에겐 별로일 수 있다. 취미 활동도 몸소 체험해보아야 그 속성을 안다. 남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 하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우리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도 마찬가지다. 삶의 만족이나 행복은 저마다 다르다. 돈이 많다고 모두가 행복하지도 않고, 가난이 곧 불행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것은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의 불평·불만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좋다’는 삶을 살려고 한다.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과 자신이 가진 것을 서로 자랑하며, 행복 경쟁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기 일쑤다. 그러니 가는 곳곳 불만과 불평이다.

젊은 시절은 다양한 삶을 섭렵하며 살고 싶은 삶을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딴판이다. 학창 시절은 입시에 매달려야하고, 졸업하고 나서는 취직에 목매야 한다. 시험공부에 꽃다운 젊음을 다 소진해 버린다. 취직해서 직장에 들어간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 쉽다.

기성세대의 삶만 그런 건 아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도 대부분 그런 삶을 강요받고 있을 것이다. 학교나 직업도 본인의 생각보다는 부모의 선택을 우선하고. 부모 역시 자신의 생각이기보다는 떠도는 정보에 의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좋은 학교, 돈 잘 버는 직장, 출세가 보장되는 직업 따위들. 그렇게 해서 주어진 자식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 사회의 불만과 불평은 이런 강요의 삶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행복지수가 가난한 나라보다 낮은 것도 자신의 바라는 삶과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은 때문은 아닌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을 강요받으며 사는 삶. 대학이나 직장도 떠밀리다시피 들어가야 한다면 행복한 삶일 수 없다. 설령 남들이 좋다는 그런 삶에서 돈이나 명예를 얻었다 해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서게 된다. 늦바람처럼 이는 늦은 방황이 그 표징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과연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진정한 ‘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니다. 남들의 시선에 맞춘 삶을 억지로 살거나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욕망하는 삶을 찾아 살아 보아야 한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니. 그 시작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그런 삶에 다가갈 수 있다. 혹여 말년에 시작한다면 다음 생에라도 ‘나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문제는 용기다. 용기 있는 자만이 진정한 ‘나의 삶’을 열어갈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