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학살 피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 문제
제주 학살 피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 문제
  • 제주신보
  • 승인 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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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한국사회과학연구회이사장/논설위원

4·27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은 지난 70년간 계속된 군사적 대치와 긴장을 넘어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선포였다. 특히 분단 70년 만에 이루어진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상회담은 미국의 북한체제 인정과 북한의 비핵화를 약속한다는 역사적 합의였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대사변이었다. 따라서 이제 한미관계도 이모저모 달라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제주학살(1947-1954)을 겪고 반세기 넘기까지 대비극의 참상과 고통을 감내해 온 제주 도민 입장에서 이런 평화 이행과 전쟁 종식 흐름은 너무나 각별한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한국임시정부 직할 한국광복군은 중국 시안 등지에 미 육군 정보부대(OSS·전략사무국)의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진공계획을 수립했다. 이때 미군은 제주섬을 주목했고, 첫 점령 대상지역으로 낙점했다. 미군은 이미 1944년부터 비밀리에 점령대상지역의 모든 분야를 1945년 4월까지 조사했다. 미 육군과 해군 정보연구보고서(JANIS 75)에 따르면 미군은 제주섬을 4개 방향에서 점령할 수 있다는 지도를 포함시켰다.

미군은 1945년 8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 상대국이었던 일본 2개 도시에 가공할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주 점령이나 한반도 진격 과정에서 피눈물 범벅이 될 수 있었던 지상전투 없이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미 소련군은 미국으로부터 극동전선에서 일본과의 전쟁 참여를 원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소련군 참전 요청은 태평양을 자신들의 호수라고 생각했던 미국에게 치명적 오판과 실책이었다.

원래 미국은 한편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서둘러 끝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영국, 소련과 중국(국민당 정부)의 일본과 한반도에 대한 분할 점령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일본 항복이 임박해 오자 소련은 대일본 선전포고와 북한 점령을 본격화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전쟁의도와 구상, 계획이 어그러지게 되자 일본 분할점령전략을 포기하고, 한반도를 소련과 분할 점령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말았다.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 편의주의에 의해 남북 조선을 점령하여 분단정권을 수립하는 하책을 썼다. 미국은 소련의 국제화, 공산주의의 남진, 특히 일본의 적화를 회피하고 싶어 했다.

미군은 남한을 점령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와 민주임시정부 수립, 좌우합작 등 점령목적 달성을 시도했으나 좌초했다. 미국은 반공극단주의노선을 채택, 시행함으로써 한반도와 제주섬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며칠 뒤 미국은 트루먼독트린을 선포하여 공산주의체제를 배제하고 반공국가를 지원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민봉기는 이런 미군정의 일방주의 정책인 남한분단시책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반공극우체제의 세계화, 국가안보국가의 수립, 반공군사주의의 관철, 타자의 배제, 이의제기집단의 멸절, 다른 정치이념의 말살을 대외정책의 금과옥조로 삼았다. 한때 남한은 미국식 극단주의를 이식, 수용, 부식하는 데 국력을 탕진했고, 국토 분단과 민족분열, 사회 파탄의 사도를 걸어왔다. 바야흐로 분단 패악의 퇴장 국면이다. 제주 학살 책임을 물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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